주요 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이 이번에는 반도체를 놓고 패권 다툼을 벌일 조짐이다.
중국 최대 반도체 설계업체인 칭화유니그룹이 세계 D램 시장 점유율 3위인 미국 메모리반도체업체 마이크론테크놀로지를 주당 21달러, 총 230억 달러(약 26조원)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고 1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양사의 거래가 성사되면 중국 기업의 미국 인수·합병(M&A) 사상 최대 규모가 된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인수 추진 배경에 반도체 산업의 ‘탈(脫) 외자 의존’을 지향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으로 관측했다. 칭화유니그룹은 바로 시진핑 주석을 배출한 중국 명문 칭화대가 1988년에 설립한 투자회사가 전신이다. 당시 대학은 운영예산 확보 차원에서 이 회사를 설립, 이공계에 강한 칭화대의 특징을 살려 주로 하이테크 분야에 투자해왔다.
칭화유니그룹은 지난 2013년 중국 양대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인 스프레드트럼커뮤니케이션과 RDA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2개사를 사들여 명실공히 중국 최대 반도체설계업체로 도약했다. 또 미국 메이저업체와의 연결고리도 갖고 있다. 회사는 지난 5월 휴렛팩커드(HP)의 중국 네트워크 장비 사업부 지분 51%를 확보했다. 인텔은 지난해 약 15억 달러를 들여 칭화유니그룹 지분 20%를 인수했다.
그러나 칭화 산하 스프레드트럼과 RDA의 매출은 지난해 총 94억 위안으로 이 분야에서 세계 최대인 미국 퀄컴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대형공장을 갖고 D램과 플래시메모리 등을 대량 생산하는 마이크론까지 인수하게 되면 칭화유니그룹은 종합 반도체업체로 도약하는 발판이 마련된다.
칭화유니그룹은 반도체에 대한 집중 투자는 자체적인 판단이라며 시진핑 지도부의 개입설에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인수 배후에는 중국 정부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시진핑 지도부는 지난해 6월 반도체 산업 진흥을 목표로 하는 ‘국가 IC산업 발전 추진 지침’을 제정했다. 올해 3월에 발표한 제조업 강화방안인 ‘중국 제조 2025’선언에도 반도체는 중점 분야 중 하나로 자리 매김했다.
중국이 반도체산업 육성에 나선 이유는 반도체 조달의 해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다. ‘세계의 공장’을 자부하는 중국이지만 모든 제조업의 두뇌에 해당하는 반도체 자급률은 20%에 불과하다. 또 미국과 일본 제조업체 반도체를 이용하면 사이버 공격 등으로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경계심도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양사의 거래가 이뤄질 지는 불확실하다. D램 1, 2위를 달리는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이번 인수가 위협이 되지만 미국도 높은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 이미 미국 정부와 의회는 과거 여러 차례 중국 기업의 미국 기술기업 인수에 제동을 건 전력이 있다. 마이크론이 갖고 있는 기술은 범용화됐지만 미사일과 군용기에도 충분히 응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 산하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는 과거 여러 차례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자국 기술기업 인수를 차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