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국제채권단에 경제 개혁안을 제출한 가운데, 구제금융 방안 중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채무탕감(헤어컷)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채무탕감은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가 보고서를 통해 언급하면서 그리스 추가 구제금융 지원 방안으로 떠올랐다. 채무탕감은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속한 시리자(급진좌파연합)가 당초 주장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최근 채무탕감을 반대하던 국제채권단 측이 입장을 선회하는 제스처를 보이면서 협상 타결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분위기다.
도날드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채권단이 그리스가 감당할 수 있을 만한 “‘현실적인’ 제안을 내놓아야 한다”며 채무 경감 필요성을 시사했다.
투스크 의장은 “그리스가 현실적인 제안을 내놓는다면 채권단 역시 이에 상응해 그리스 채무를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낮출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그래야 ‘윈윈’이 가능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도 전날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그리스가 이행해야 할 각종 개혁 방안과 더불어 필요한 또 하나의 조치는 채무 조정”이라고 밝혔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 역시 그동안 고수했던 강경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듯한 발언을 해 이목을 끌었다.
발칸 국가를 순방중인 메르켈 총리는 이날 사라예보에서 기자들에게 “고전적 헤어컷(채무탕감)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이에 외신은 메르켈 총리가 ‘고전적’이라는 표현을 쓴 점에 주목하며, 고전적 헤어컷은 안 되지만 다른 채무 경감 방안은 검토할 여지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쇼이블레 장관 역시 “그리스 채무의 지속가능성은 헤어컷 없이는 타당하지 않으며 IMF의 채무경감 검토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그리스 정부는 채무탕감 요구를 고수할지, 아니면 채무탕감을 제외한 만기 연장 등의 채무 재조정만 요구할 지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스는 지난 2월 ‘기술적 헤어컷’으로 규정한 채무 구조조정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 방식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이 보유한 1420억 유로 규모의 국채를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에 연동한 국채로 교환하고, 유럽중앙은행(ECB)이 보유한 270억 유로 규모의 국채는 만기가 없는 영구채로 바꿔 이자만 갚는 것이다.
그리스 정부는 전날 유로존의 상설 구제금융기구인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에 3년간 구제금융을 요청하면서 세제와 연금개혁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