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술에 절어 사는 걸 보다 못한 아내가 울면서 “그러면 몸이 견딜 수 없으니 끊으라”고 하자 유령은 “나 스스로 끊을 수 없어 귀신에게 빌고 맹세해야 하니 술과 고기를 준비하라”고 했다. 아내가 혹시나 하며 술과 고기를 차리자 그는 꿇어앉아 빌기를 “한 번에 한 섬을 마시고 닷 말 술로 깨게[五斗解酲] 해주소서. 아녀자의 말은 들을 게 못 됩니다”라고 하고는 또 마시고 대취했다.
그는 걸핏하면 옷을 벗고 살았다. 친구가 와도 일어나지 않아 나무라면 “나는 천지를 막(幕)과 자리로 삼고 집을 옷으로 삼는데, 왜 남의 잠방이 속에 들어와 시비를 거느냐”고 했다. 항상 한 동이의 술을 들고 괭이를 멘 머슴을 데리고 다니며 “내가 죽거든 그 자리에 묻어 달라”고 했다.
술의 덕을 찬양한 주덕송(酒德頌)을 짓기도 했다. 그 글에 “머물면 술잔을 잡고 움직이면 술통을 당기니 오직 술에 힘쓸 뿐 그 나머지를 어찌 알리오!”[止則操卮執觚動則挈榼提壺 唯酒是務 焉知其餘]라는 대목이 있다.
많은 시인들이 그를 찬탄하는 글을 남겼다. 신라 때 최치원은 ‘춘효우서(春曉偶書)’에서 “생각하면 유령의 아내 미운지고/억지로 낭군을 권해 술잔 덜 들라 하다니”[思量可恨劉伶婦 强勸夫郞疎酒盃]라고 했다. 고려 때 김부식은 ‘주성유감(酒醒有感)’에서 이렇게 읊었다. “늘그막에 생계가 족함을 알아/바야흐로 유령의 자리와 장막 넓은 걸 믿노라.”[老來生計皆知足 方信劉伶席幕寬] 하늘을 장막(帳幕)으로 삼고 땅을 자리로 알고 살았던 유령의 막천석지(幕天席地)를 부러워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