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배우가 브라스(Brass)까지 2개 또는 3개의 악기를 현란하게 다뤄야 한다. 내용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우주 공간으로 옮겨 놓은 다소 실험적인 내용이다. 대사도 셰익스피어 작품들 속의 명대사 패러디 향연이다. 그래서 개막 행사 날 객석에서 보면서 지금 봐도 생경한 요소들이 있다 여겼다.
감회도 새로웠다. 지난 2년간 대국국제뮤지컬페스티벌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특히 개막 날은 먹지도 앉지도 못하고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임기를 끝내고 올해는 초대받아 공연을 즐기자니 무척 편하고 즐거우면서도 전쟁 같던 지난 시간들도 추억이구나 싶다.
그런데 감회가 더 남다른 것은 개막 공연 ‘포비든 플래닛’은 13년 전인 2002년에 서울 LG아트센터에서 한국 라이선스 공연을 이미 했고 그때 제작감독으로 그 라이선스 공연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주연을 맡았던 배우 남경주와 함께 공연을 봐서 더 그랬다.
뮤지컬 ‘포비든 플래닛’은 록 콘서트처럼 신나는 뮤지컬이다. 그러나 2002년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이 뮤지컬을 1000석이 넘는 메이저 공연장에서 한국 배우와 스태프로 라이선스한다는 건 무모할 정도의 개척적 도전이었다.
일단 배우 섭외가 문제였다. 지금처럼 뮤지컬 전문 스타 배우가 없는 실정인데 악기까지 다루며 록 발성으로 노래도 잘하는 뮤지컬 배우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당시 밴드 활동을 하던 송용진과 허규 또 오만석의 데뷔 무대이다시피 했고 주연 남경주도 기타와 색소폰 연습에 몰두했다. 특히 여배우가 부족해 가수 박기영을 주연으로 섭외해 연기 지도를 따로 하기도 했다. 대중음악 분야의 김성수 감독이 음악감독으로, 대중음악 세션들을 배우로 캐스팅해 뮤지컬 작업으로의 체질 개선에 공을 들였다.
셰익스피어의 주옥같은 명대사들과 올드 팝을 화학적으로 결합시킨 이 뮤지컬은 영국이 아닌 한국 관객들에게는 이상한 체험이었다. 우리 뮤지컬 시장은 아직도 다양성은 부족하고 주류와 비주류의 이분법적 분류가 팽배한데 다양성의 산실인 영국에서도 B급 뮤지컬의 대명사인 이 뮤지컬을 13년 전에 한국 관객들이 보면서, 또 주크박스 뮤지컬과 액터 뮤지션 뮤지컬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보면서 얼마나 낯설었을까. 그런데 뮤지컬 ‘포비든 플래닛’을 대중적 공연으로 마케팅할 엄두를 냈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아찔할 지경이다.
그러면서 2002년의 한국 뮤지컬 시장을 돌아봤다. 그때 서울 서초 예술의전당을 제외하고는 대형 뮤지컬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공연장이었던 LG아트센터에서 ‘포비든 플래닛’ 직전 작품으로 올라갔던 ‘오페라의 유령’이 한 방에 매출 180여억원의 기록을 세우기 전까지는 시장 전체 매출이 30억원 정도로 추정되는 시절이었다. ‘시카고’, ‘캣츠’, ‘맘마미아’, ‘미녀와 야수’, ‘아이다’ 등 한국 뮤지컬 시장을 대형 라이선스 시장으로 자리 잡게 한 유명 해외 공연들도 2003년부터 선보였다. 그때는 남경주가 유일한 뮤지컬 스타였으며 스타 캐스팅이 흥행을 좌지우지하는 시절이 절대 아니었다. 체계적인 제작 과정도, 뮤지컬 전문 프로듀서의 개념과 직업군의 세분화도 제대로 확립된 때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때 뮤지컬을 만드는 사람들은 시도와 행보 자체가 개척이었고 선례였고 모델이었다. 그래서 치열했고 가치에 대한 소명의식이 강했고 시장 전체를 위해 헌신했고 관객들을 바람직한 공연 문화로 가이드하겠다는 책무의식도 남달랐다.
2015년 여름, 편하게 뮤지컬 ‘포비든 플래닛’ 오리지널 공연을 보면서 2002년 여름을 피땀으로 보냈던 척박하고 무모하고 찬란했던 뮤지컬 ‘포비든 플래닛’의 라이선스 제작 과정과 그때의 동지들인 한국 뮤지컬의 순수한 선구자들이 애틋하게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