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임신 중절 수술을 시행하면서 수액을 과다 투여하고 이상 증세 호소에도 적절한 조치 없이 수술을 강행해 임신 12주차 환자를 뇌사에 이르게 한 의사가 구속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중국인 유학생 오모(25·여)씨를 뇌사시킨 혐의(업무상과실·중과실치사상 등)로 종로구 여성병원 원장인 산부인과 의사 이모(43)씨를 구속하고 간호조무사 이모(47·여)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9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의사 이씨는 올해 1월 19일 중절 수술을 위해 병원을 찾은 오씨에게 적정량(1천㎖)의 네 배가 넘는 4천∼5천㎖의 수액을 투여, 혈중 나트륨농도가 저하되는 저나트륨혈증에 의한 뇌부종으로 오씨를 뇌사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오씨는 수액을 맞으며 뇌부종 증상인 구토와 발작, 두통, 시력감소 등의 증세를 호소했지만 의사 이씨는 불법인 중절 수술 사실이 알려질 것을 우려해 큰 병원으로 오씨를 옮기지 않고 그대로 수술을 강행했다.
수술 당일 오전 10시부터 수액을 맞은 오씨는 오후 3시부터 이상증세를 보였지만 의사 이씨는 4시간 후인 오후 7시께 결국 자궁 내 태아를 긁어내는 소파수술을 했고, 오후 8시 40분께 뇌간반사가 없는 상태로 인근 대학병원에 오씨를 옮겼다.
또 수술일 전날과 당일 오전 임신 중절 수술에 쓰이는 자궁수축촉진제 '사이토텍' 4알을 복용한 오씨는 구토 등 이상증세도 함께 보였지만 역시 적절한 조치는 없었다고 경찰은 덧붙였다.
의사 이씨는 수술일보다 사흘 앞서 병원을 찾은 오씨에게 임신 12주차라는 사실을 확인해주면서 "시일이 지나면 낙태가 더 어려워진다"며 중절수술을 권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에서 의사 이씨는 수액을 적정량인 1천㎖만 투여했고, 오씨가 정상임신이 아니었고 강제 낙태가 아니라 이미 사산한 태아를 제거하는 수술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범행을 부인했다.
의사 이씨는 의료 차트 내용에서 '인공유산' 부분을 '계류유산'으로 고치고, 병원 내 폐쇄회로(CC)TV 화면을 삭제하려고 시도하는 등 범행 증거를 없애려 한 혐의도 받았다.
경찰은 오씨가 대학병원으로 이송됐을 때 의사 이씨가 대학병원 응급실 의사에게 수액을 과다 투여했고 임신 중절수술을 했다는 내용의 진술을 확보하고 진료 차트를 분석해 의사 이씨에게 과실이 있음을 밝혔다.
경찰은 2009년부터 의사 이씨의 병원에서 340여건의 소파 수술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6건을 조사한 결과 6건 모두 오씨 건처럼 불법 중절 수술임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