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원 블루버드 대표이사
학창 시절과 사회 초년생 시절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대단히 계획적인 삶이었습니다. 창업을 염두에 두고 경영학과를 선택했고, 창업 아이템을 찾기 위해 제가 들은 수업의 절반 이상은 컴퓨터공학, 계산통계학, 수학과 같은 이공계 과목들이었습니다. 결국 학부를 졸업하고 산업공학과로 석사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입사했던 직장 생활도 실무 경험을 배우기 위한 ‘창업’의 과정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계획을 세우고, 그 방법을 미리 시뮬레이션해보고, 그 계획에 맞춰 삶을 살아왔던 점은 어쩌면 제 성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시작되었던 27살의 창업, 그 이후의 삶은 제가 상상했던 그 이상을 뛰어넘는 인고의 시간이었습니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가장 힘들었거나 행복했던 일은 언제였나요?” 가끔 인터뷰를 요청해 오시는 분들이 거의 빼놓지 않고 하시는 질문입니다. 젊은 나이에 창창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와 창업을 했고, 근 20년간 기업을 경영해 왔던 스토리에 아주 재미있고 드라마틱한 사연들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제 대답은 늘 같았습니다. “매 순간이 제게는 인고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을 참고 인내하며 다시 무언가를 시도하는 과정의 연속이었습니다.”
창업을 꿈꾸는 많은 분들이 성공한 기업가들이 가지는 이미지와 그 환상을 동경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고 스티브 잡스처럼 수많은 군중들과 화려한 조명 위에서 신제품 발표를 한다거나, 레드 카펫 위에서 샴페인 잔을 들며 건배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업가’, ‘경영인’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기업가 이미지를 그리며 창업을 하고자 한다면,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막연하게 사회적 이미지와 명성, 막대한 부를 꿈꾸며 창업을 하는 행동만큼 위험천만한 일은 없습니다. 창업은 레드 카펫이 깔린 길이 아닌 험난한 가시밭길이라는 각오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물론 창업이나 직장생활, 대인관계 모두 비슷한 맥락입니다. 큰 관점에서 보면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가 겪게 되는 수많은 항로의 본질은 비슷합니다. 어떤 삶을 살아도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그 도전에 따르는 인고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그릇을 키워가는 게 인생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상에서 붕어빵을 만들어 파는 일은 그 누구에게는 지루한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고로 맛있는 붕어빵을 만들어 다른 이들에게 행복감을 주고 싶다는 순수한 열정을 가진 이의 붕어빵은, 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최고의 맛이 될 것이고, 만드는 이 역시 그 열정을 가지고 그 순간을 즐길 것입니다.
또한 창업의 길은 좀 더 큰 책임감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야 합니다. 비단, 저뿐만이 아닌 우리 가족이 있고, 직원이 있고, 또 직원의 가족이 있고, 협력업체 직원들과 가족도 있습니다. 막연했던 유년 시절의 꿈으로 시작된 창업은 제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막중한 책임감을 제게 안겨 주었습니다. 단지 저 개인의 영달보다 많은 분들과 함께하는 기업이 되길 희망하고, 그분들에게 삶의 터전이 되고, 나아가 후세들에게도 그들의 꿈을 가꿔 갈 수 있는 공간이 되길 소망하며 인고의 시간을 인내하고 인내하고 인내해 왔습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분들이 더 큰 번뇌의 시간을 갖게 된다는 말은, 선민 의식이나 특권 의식을 가지라는 뜻은 아닙니다. 많은 분들에게 삶의 직·간접적인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직업을 본인이 선택한 만큼, 반드시 일종의 사명감과도 같은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저에게 사업은 수많은 책임감을 안고 인고의 시간을 버티며 나의 그릇을 오롯이 키워 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우연이 거듭되어 선택한 나의 길이 필연이 되었다면, 그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묵묵히 그 길을 가고 인내하고 극복해야 합니다.
이렇게 제가 인내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제 손으로 세계 최고의 제품, 세계 최고의 회사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업에 대한 순수한 열정, 그리고 책임감이었습니다. 이러한 업에 대한 순수성과 책임감을 통해 끊임없는 도전과 인고의 과정을 뜨거운 열정으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창업 3년 만에 소프트웨어에서 ‘산업용 휴대 단말기’라는 하드웨어로 업종을 전환하고, 시장 장벽이 높아 수많은 연구 개발 끝에 첫 국산화에 성공을 하고 나서도 매출을 올리기까지 4~5년 이상 걸렸습니다. 그럼에도 묵묵히 기술과 제품 개발에 열중했던 그 원동력도 결국은 인내력이었습니다. 인내를 가지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면 반드시 팔릴 것이라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사실, 그리고 기술력과 사용자 친화적인, 지극히 기본에 충실한 제품만이 시장에서 살아 남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업종 전환을 모색하던 1998년 당시 산업용 휴대 단말기 시장은 지브라 테크놀로지의 전신인 미국의 심볼 테크놀로지·하니웰, 일본의 후지쓰·캐논과 같은 글로벌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영속 가능한 기업, 글로벌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던 산업용 휴대 단말기 시장은, 외부에서 봐왔던 것 그 이상으로 지독히 보수적인 시장이었습니다. 산업용은 좀 싸거나 디자인이 좋다고 해서 잘 팔리지 않습니다. 이유는 산업용 기기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그 회사의 인프라를 형성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즉, 산업용 모바일 기기를 교체하려 할 때 회사에서는 최소한 그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의 브랜드가 아니면 잘 선택하지 않습니다.
엄청난 개발비를 투자한 제품을 제대로 팔지도 못하고 다시 업그레이드 제품을 개발해야 했던 적이 허다했습니다. 그러던 2002년 경쟁 기업들이 기술 난이도에 비해 시장이 작아 외면한 제품을 우리는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제품’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단순히 ‘그냥’ 만든 것이 아니고, 이동통신과 결제, 인쇄, 바코드 기능까지 모두 통합하면서 비슷한 기능의 기존 제품 대비 약 3배 이상 작고 가벼운 제품이었습니다. 국내 대형 백화점을 중심으로 우리 제품을 대량 공급하는 데 성공했고, 이에 대한 매출과 수익을 대부분 연구 개발에 재투자했습니다. 국내에서도 본격적인 성과를 내기까지 3~4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지만 해외시장은 그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꿈은 그 크기만큼 실현된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꿈과 목표는 크게 가져야 합니다. 저는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바라보면서 산업용 단말기 시장에 도전을 했고, 궁극적인 목표는 ‘First Tier’를 넘어선 ‘World Best’ 제품과 회사였습니다. 만약 제가 목표를 단순히 국내 1위만으로 한정 지었다면, 세계 120여개국으로 자체 브랜드 제품을 수출하고 있는 지금의 블루버드도 없었을 것입니다.
기업은 수익이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업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블루버드는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연구개발형 제조기업이고 연구 개발이 업의 본질입니다. 무모하리만큼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하며 업의 본질을 지킨 결과, 블루버드는 자기 브랜드를 가지고 20여년을 세계 시장에서 거대 기업과 당당히 경쟁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극적인 것은 없습니다. 결과 뒤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을 잉태하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와 인내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내를 지탱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글로벌 영속 기업’이라는 굳건하고 흔들리지 않은 목표, 삶의 터전을 함께 가꿔 나가는 직원들, 나아가 후세라는 공동체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직원들도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는 회사,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이 되어 줄 수 있는 회사가 진정한 영속 기업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바깥에서 보면 우아하지만 물 밑에서 열심히 갈퀴질을 하는 백조와 같은 삶.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기업인의 삶입니다.
<약력>
1968 부산 출생
1992 서울대 경영학과 학사
1994 서울대 산업공학과 석사
1994 삼성데이터시스템 부설연구소 전임연구원
1995~현재 ㈜블루버드 설립 및 대표이사
2005 벤처기업대상 산업자원부 장관 표창
2009 우정사업본부 지식경제부 장관 표창
2010 Global IT CEO 지식경제부 장관 표창(제1회 수상)
2011 제45회 납세자의 날 기획재정부 장관 표창
2011 제42회 한국을 빛낸 이달의 무역인 선정
2013 제50회 무역의날 대통령 표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