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28일 경주의 자동차 부품업체인 발레오전장시스템 노동자들이 낸 ‘총회결의무효 등 소송’ 상고심 사건에 대해 공개변론을 열었다. 이번 판결이 산별노조 중심의 노조 형태를 재편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 법조계는 물론 재계와 노동계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법원은 그동안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열면 2~3개월 내에 판결을 선고해온 만큼 이번 사건의 결론도 조만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산별노조, 기업별 노조 차이점은 = 원래 우리나라의 노동조합은 기업별로 노조가 형성됐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IMF 경제위기의 여파로 대규모 정리해고가 실시되는 등 고용이 불안해지자 노동계는 노조의 교섭력을 강화하기 위해 산업별 노조로 전환을 시도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산업별 노조가 금속노조다. 금속노조를 필두로 종래 기업별 노조 상당수는 총회의결을 거쳐 산별 노조의 산하조직인 지회로 편입됐다.
이번에 사건 당사자인 금속노조 발레오전장 지회는 그 반대의 경우다. 발레오 지회는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임시총회를 열고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별도의 노조를 만들기로 결의했다. 조합원 601명 중 550명(91.5%)이 참석했고, 그중 97.5%에 해당하는 536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지회 임원이었던 박씨 등은 임시총회에 참석하지 않았고, 이 결의가 무효라는 소송을 냈다.
◇기존 법원 입장은… ‘발레오전장 노조 전환 불가’ = 이 사건에서 1, 2심 재판부는 모두 발레오전장이 산별 노조인 금속노조를 탈퇴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발레오전장 지회 규칙이 금속노조의 지회 모범 규칙과 동일한 이상 금속노조의 의결사항에 반하는 총회 결의를 할 수 없고, 발레오전장 지회는 독립된 노조가 아닌 금속노조의 산하 조직에 불과하므로 조직 형태를 바꾸는 의결은 효력이 없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기존 노조원들이 새로 기업별 노조를 결성하더라도 노조 재산은 그대로 금속노조 발레오전장 지회 소유로 남는다. 또 새로 생긴 기업별 노조는 단체협약을 체결하더라도 효력이 없고, 이전에 금속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의 효력이 그대로 유지된다.
대법원 공보관실은 “산별 노조의 산하조직이 기업별 노조로 조직형태를 변경한 데 대해 효력이 다퉈지는 사례가 여러 건 있다”며 “이 사건의 결론은 향후 노조 조직형태와 운영방식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건 쟁점은… 발레오 지회 ‘독립성’ 입증이 관건 = 1, 2심이 발레오전장이 산별노조를 탈퇴해 기업별 노조를 만들 수 없다는 결론을 냈지만, 사건이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되는 소부에 머무르지 않고 전원합의체로 넘어온 만큼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대법관 전원이 심리하는 재판부인 전원합의체는 사건을 담당한 소부의 대법관 의견이 엇갈리거나 기존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는 경우, 대법원이 정책적으로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심리를 진행한다.
이번 사건 결론이 어느 쪽으로 나건 대법원은 산별노조 탈퇴와 관련해 몇가지 쟁점을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산별노조의 산하조직인 지부가 기업별 단위노조로 변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 논거는 무엇인지, 반대로 가능하다면 그 요건은 무엇인지 대법원 판시 사항에 따라 산별노조의 노동계에 미치는 지배력은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 하급심도 산별노조의 하부조직은 원칙적으로 조직형태를 변경할 수 없다고 봤지만, 산별노조 지회가 독립한 단체로서의 실체를 갖추고, 독자적인 단체교섭 능력, 단체협약 체결 능력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독립된 노조로 평가할 수 있으며, 이때에는 총회의 결의에 따라 조직형태를 기업별 노조로 변경할 수 있다고 봤다.
발레오 지회의 경우 지회 규칙이 문제가 됐다. 금속노조 발레오전장 지회 규칙은 △금속노조의 지회 모범 규칙과 동일하고 △금속노조의 의결사항에 반하는 총회 결의를 할 수 없으며 △노사 의견이 일치된 안에 대해서도 금속노조 위원장의 승인을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독립된 단체로서의 실체를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번 사건 하급심은 또 임금교섭 역시 금속노조(경주지부)가 사용자 단체와 집단교섭 형태로 진행했고, 단체협약 역시 금속노조 위원장 명의로 체결한 점을 고려하면, 금속노조 발레오전장지회를 독립된 노조로 볼 수 없으므로 조직 형태를 기업별 노조로 변경하기로 한 총회결의는 무효라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