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은 메르스의 확산을 우려하며, 지난 4일부터 마스크를 착용하고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지금 야구가 문제인가? 사람이 먼저다. 관중이 옮을 수 있다. 야구나 학교보다 사람이 먼저다”라고 주장하며 메르스에 대해 선제 대응할 것을 강조했다. 참고로 한화는 5월 좌석 점유율 95%를 기록했고, 5월 12경기 중 9경기가 매진될 정도로 KBO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그 팀의 수장이자 현재 돌풍의 주인공인 김 감독이 리그의 잠정적 중단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 팬들을 향한 그의 진심 어린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메르스 포털에 등록된 14일 자료에 따르면 메르스 확진자는 145명, 감염 의심자는 총 5208명이다. 그런데 14일 당일에만 400명의 감염 의심자와 7명의 확진자가 새롭게 등록될 만큼 폭발적인 확장성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미 4차 감염자가 발생한 것은 물론, 전국에 동시 다발적으로 확진 감염자가 발생하고 있어, 이미 우리나라의 모든 지역이 실질적인 감염 위험지역으로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걸친 대응책은 너무나 미흡하기만 하다. 이는 스포츠도 예외가 아니다.
KBO와 K리그는 지난 9일에서야 각각 이사회와 긴급위원회를 열어 메르스 관련 대처 방안을 논의했다. 최초 확진 환자가 발생한 5월 20일로부터 20여일, 최초 사망자가 발생한 6월 1일로부터 9일이나 지난 시점이다. 이들의 대응책은 실망스럽기만 하다. 매뉴얼을 준비하고 확산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지만, 리그 강행으로 근본적인 위험을 관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리그의 결정뿐만 아니라 정부의 의지이기도 하다.
지난 14일 서울 잠실야구장을 찾은 김종덕 문체부 장관은 리그 중단에 대해 “그러면 안 된다. 과한 걱정이다. 모든 행사가 취소되면 공포심이 더 증폭된다”라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은 6월 1일 첫 사망자가 나오기 전까지 ‘대유행 가능성 작다’, ‘과도한 걱정은 필요 없다’를 강조하며 ‘괴담 유포자 엄벌’에만 열을 올리던 정부의 무능한 대응과 매우 닮아 있다.
스포츠의 현장은 단순 친목 모임의 현장이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하며, 함께 소리 지르고 노래 부르며 응원한다. 사람들 간의 밀접도가 매우 높은 것은 물론, 매점, 화장실 등 세균과 바이러스가 번식하기 매우 좋은 장소까지 포함되어 있다. 만약 이러한 곳에 메르스 감염자가 방문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국가적 재앙의 시작이 될 것이다. “스포츠 경기장이나 쇼핑몰이야말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쉽게 확산되어 감염을 일으키기 쉬운 장소”라는 캘거리 대학의 글렌 암스트롱(Glen Armstrong) 교수의 주장이 이를 뒷받침한다.
야구와 축구는 이미 관중 수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는 등 자발적으로 회피하는 장소가 되고 있다. 또한 KBO는 과거 황사로 시범경기를 취소한 선례도 있고, 올해부터는 황사로 인한 경기취소 관련 규정 제27조를 신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황사가 메르스 확산에 비할 수나 있을까?
위험관리는 일반적으로 위험가정, 손실예방, 손실감소, 위험회피의 4단계로 구분된다. 현재의 상황은 최악의 상태인 위험회피의 단계로 리그의 즉시 중단을 최우선으로 고민할 때다. 그동안 프로스포츠가 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만큼 국민의 안전을 염려하는 태도를 먼저 보여야 한다.
모로코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자국 내 확산을 우려해 2015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대회를 개최하지 않았고, 이에 차기 2개 대회 출전금지라는 큰 제재를 받았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자국민의 안전에 우선할 수는 없기에 자국민으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지금 야구가 문제인가? 사람이 먼저다. 관중들이 옮을 수 있다.” 김성근 감독의 투박한 말이 정부와 스포츠 단체의 그 어떤 화려한 대책보다 더 큰 울림이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