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제정된 주거기본법은 국민의 주거권을 “국민이 법령에 따라 물리적, 사회적 위험에서 벗어나 쾌적한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또 주거복지정책의 지표로서 유도주거기준을 “1인가구의 경우는 33㎡에 방 2개와 부엌, 4인가구의 경우는 66㎡에 방 4개와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겸한 부엌” 식으로 아주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국가와 지자체는 국민 모두가 유도주거기준을 충족시키는 주거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주거급여의 제공, 공공임대주택의 공급 등 주거복지전달체계를 구축하여야 한다. NGO,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이 공급하는 ‘사회주택’의 개념도 처음으로 도입했다.
“빚내서 집사라”며 내 집 마련 지원과 부동산경기 활성화만 외치는 등 주택의 건설과 공급에만 매달려왔던 우리 주거정책의 일대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공급 중심에서 수요 중심으로, 소유와 매매 중심에서 거주와 임대 중심으로, 건설산업 중심에서 주거복지 중심으로 일대 전환이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토록 커다란 의미를 갖는 주거기본법을 제정하고도, 국회 서민주거복지특위의 야당 간사로서 법 제정 과정의 일익을 담당했던 나 자신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주거복지법 제정이 우리 서민들의 주거문제 해결에 장기적인 해법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당장 치솟는 전월세로 고통 받는 세입자들에겐 그저 화려한 청사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서민주거복지특위는 주택임차인들의 권리보호를 위해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주택임대료분쟁조정위원회와 표준임대료제도 도입, 전월세전환율 인하 등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을 논의하고 있으나, 여야간 이견으로 아직 실질적인 세입자 보호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선진국들은 세입자가 나가겠다고 하지 않는 한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집주인이 함부로 세입자를 내보내지 못한다고 한다. 다만 임대료를 조정하게 되는데, 쌍방 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분쟁 조정절차를 거친다. 또 많은 나라들의 지방정부는 임차인과 임대인 사이의 원만한 합의를 유도하기 위해 표준임대료 또는 공정임대료를 정해 공시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쟁점들 가운데 세입자 보호의 핵심은 역시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이다. 아무리 분쟁조정을 잘하려 해도, 아무리 전월세 전환율을 낮춰서 서민의 부담을 덜어주려 해도, 현행제도는 2년 계약기간 내에만 적용되고 신규계약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부여당이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에 반대하는 것은 세입자를 보호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솔직히 시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1989년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때처럼 임대료 상승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최근 확인된 바에 따르면 1989년 개정으로 오히려 임대료 상승세가 잡힌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국회가 모처럼 우리나라 주거정책의 획을 긋는 주거기본법을 여야 합의로 제정하는 등 서민을 위한 정치에 발벗고 나섰다. 그러나 국회가 여기서 주저앉으면 안 된다. 주택임대차 계약갱신청구권 등 선진적인 제도도입을 통해 서민주거 안정을 도모해야 할 책임이 아직 국회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