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벌써 29살이야. 졸업한 지도 2년이 넘었고..."
"얼마나 눈을 낮춰야 되는지...이젠 여자친구 보기도 민망해"
"취직한 네가 내 맘을 알기나 하겠니..."
오랜 만에 취준생 대학동기를 만났습니다.
반복된 취업준비에 지친 친구의 얼굴에는 웃음기는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건 제가 그 친구에게 해줄 말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요즘 만나는 사람이라곤 스터디 사람들 밖에 안 만나"
"나랑 비슷한 상황에 있거나, 나 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많으니까..."
혹시 '달콤상자'라고 들어보셨나요?
지하철 역, 사람의 이동은 잦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잘 미치지 않는 물품보관함.
'나'를 위한 것이 아닌 '위로가 필요한 그 누군가'를 위한
물건들이 모이는 좀 특별한 보관함입니다.
'달달한' 이름처럼 사탕이나 초콜릿 등 각종 달콤한 것들과 함께
위로의 메시지가 가득한 것이 특징이죠.
'달콤상자'가 시작된 것은 모바일 앱 '어라운드'에서부터인데요.
이용자들이 각자의 고민을 쓰면 서로가 응원해주고
위로해주는 앱으로 큰 사랑을 받고있죠.
이 '훈훈함'이 오프라인으로 옮겨져 '달콤상자'가 탄생하게 된 것인데요.
처음에는 강남역, 종로3가역, 합정역 등 서울 시내 몇 군데에서 시작돼,
지금은 대학가를 비롯 취업준비생들이 자주 다니는 곳을 중심으로
수 십개로 늘어났고요.
최근에는 부산 대구 등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달콤상자 운영방식은 간단합니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한 달 단위로 물품보관함을 임차하고
간식거리는 물론, 다양한 물건들을 넣어 놓습니다.
주인이 따로 없는 이 달콤상자.
비번은 SNS을 통해 공유되고 있습니다.
먹는 사람 따로 있고, 채워넣는 사람 따로 있는 거 아니냐고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꺼내 간 사람이 다시 채워놓기도 하고
채웠던 사람이 물건을 가져가기도 합니다.
제가 들러 본 '달콤상자'는 1호선 노량진역에 있는 3번 물품보관함.
노량진은 공무원시험, 사법시험, 대학 입시 등 각종 시험들과 사투를 벌이는
청춘들이 모여있는 곳으로도 유명하죠.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열어본 '달콤창고'
각종 과자와 사탕은 물론 구급약에서부터
메르스 조심하라는 당부의 글귀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가운데에는 노트가 놓여있더군요.
일종의 방문록이었습니다.
한 때 노량진에서 청춘을 보냈던 한 직장인이 보내는 응원메시지부터
'오늘은 그냥 가져만 가지만 다음에 꼭 채워넣겠다'는 고시생의 다짐까지...
저마다 서로를 응원하는 메시지가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이들은 '얼굴없는 지지자'를 자처하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응원하는 걸까요?
'위로를 받고 싶은데 위로를 받을 곳이 없는' 청춘
'가까운 주변인들이 건네는 위로가 부담으로 느껴지는' 청춘
'내가 겪고 있는 힘듦,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위로받는' 청춘
이유야 어찌됐든 서로의 청춘을 응원하고픈 맘이 모여
차가운 물품 보관함에서 위로를 건네고 위로를 받는 것이죠.
문득 친구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엄마가 괜찮다며 아버지 몰래 용돈주는데 그게 더 미안해 죽겠어"
"차라리 엄마가 화를 내면 내 맘이 편할거 같다니까"
한 달콤창고 이용자는 자신의 표정 하나하나 맘 쓰는 부모님보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름모를 누군가가 남긴 위로가
더 맘에 와닿고 용기가 된다고 적어놓기도 했습니다.
훈훈한 문화이긴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일각에서는 의도는 좋지만 악용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요.
부디 이러한 훈훈한 문화가 변색되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천재소녀' 진실공방...누구의 잘못인가? [e기자의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