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공시제도 개편] 단순한 숫자 나열 아닌 기업의 장기비전까지 담겨야

입력 2015-06-0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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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선진국 공시에선 CEO멘트 통해 경영계획전략 등 밝혀

▲임종룡(오른쪽에서 두번째) 금융위원장이 지난 5월 열린 ‘기업공시 제도개선을 위한 현장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금융위원회

기업 공시는 공시주체인 기업과 이를 투자정보로 이용하는 투자자 사이에서 이해관계가 상충된다. 공시 규제를 까다롭게 적용하면 기업 입장에서 공시가 부담이 된다. 공시 부담은 곧 부실한 공시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반면 공시를 투자정보로 이용하는 이용자는 더 많고 자세한 내용을 원한다.

둘 사이에서 좀더 효율적인 공시제도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투자업계에서 꾸준히 이어졌다. 결국 금융위가 추진 중인 기업공시 개편안은 현 공시제도의 맹점을 개선하고 좀더 효율적인 방안을 찾기 위해 마련됐다.

새로운 공시제도는 △투자정보 효율성 △공시 실효성 △기업공시 규제완화 등이 골자다. 이를 위해 현재의 열거주의 공시에서 포괄주의 공시를 지향한다. 증시 선진국 공시제도가 대부분 포괄주의다. 우리 자본시장 역시 선진 공시제도의 단순 답습이 아닌, 우리 실정에 맞는 과감한 개선안과 이에 따른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기업의 공시 부담 완화가 1차 목적 = 9일 금융투자업계와 재계 등에 따르면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공시 개편안의 원칙은 제한과 금지 규정을 철저하게 지키되 나머지는 자유화하는 방식이다. 이른바 ‘포괄주의(negative system) 가 원칙이다.

포괄주의란 제한ㆍ금지 규정을 중심으로 나머지는 원칙적으로 자유화한다는 방식이다. 포괄주의 공시제도가 기존의 열거주의보다 훨씬 자유로운 제도로 보면 맞다.

정부는 열거주의 공시제도를 포괄주의 체계로 개편하기 위해 꾸준한 검토를 해왔다. 앞서 지난 1일 금융당국이 발표한 ‘기업공시종합시스템 구축 및 제도개선 추진방안’을 보면 금융당국은 올해 하반기부터 2018년까지 단계적으로 공시체계를 완전 포괄주의로 전환할 계획이다.

공시제도 개편안이 추진되는 이유는 경제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기존의 열거주의는 순간순간의 대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앞서 금융위가 주최한 ‘기업공시 제도 개편 현장 간담회’에 참가한 농심 IR담당자는 “공시와 관련해서 여러가지 서식이나 규정이 수시로 바뀐다”며 “기업공시 담당자들이 이를 못 쫓아갈 정도로 종류가 많고 복잡하다”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현대제철 공시 담당자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현재 공시제도의 모순을 밝혔다. 그는 “사업장(충남 당직 또는 해외)이 물리적으로 분리돼 있는 경우 (돌발상황)발생 때 즉각적인 대처와 공시가 어렵다”며 “생산라인에서 화재가 발생한 경우 발생한 화재피해가 자산 총액의 2.5% 해당하는 것인지 바로 확인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화재는 발생했지만 이로 인해 “곧바로 피해 규모 확인이 어렵다”는게 기업이 주장하는 열거주의 공시의 맹점 가운데 하나다.

재계 관계자들 역시 이같은 근거를 앞세워 기업 공시제도의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투자자가 요구하고 필요로 하는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면서 기업의 공시부담을 덜어내기 위한 방책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다.

현재 무조건적인 규제도 어느 정도는 풀려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수로 공시가 잘못 발표된 경우와 고의적인 허위 및 거짓 공시는 구분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 부분에서는 금융위원회 역시 같은 생각이다.

앞서 지난 달 19일 열린 공시제도 개편 간담회에 참석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불성실 공시의 경우, 경중을 가려야한다”며 “약간의 실수와 거짓 허위인 공시 경중을 가려서 제재를 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제공자들이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재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공시제도 개편안이 충분한 보완점을 갖추기 위해서 적지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증권가에서는 선진국 공시의 형태를 예로 들며 공시 제도가 아닌, 공시 문화의 변화도 촉구하고 있다.

◇목표는 투자자 보호…CEO 경영전략도 포함되는 선진국 공시=지금까지의 공시는 단순한 기업정보에 그쳤다. 질적인 측면보다 형식적인 측면이 강조돼왔다는 의미다. 본격적인 포괄주의 공시제도가 도입되면 현행 단순한 정보나열 형태의 공시 제도 역시 변화를 맞아야 한다. 숫자가 아닌 서술형태의 공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MSCI 선진지수에 포함된 주요 증시 선진국 공시가 이런 형태다. 단순한 숫자의 나열이 아닌, 향후 기업 오너의 장기적인 경영계획과 의지, 경영전략의 배경이 되는 경영 마인드까지 공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공시에서 CEO 멘트가 나오는 방식이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의 경우 직접 CEO의 멘트를 인용해 투자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심지어 창업자 또는 경영상 주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주요 인물의 근황과 거취에 관해서도 공시가 나온다.

실예로 지난 2011년 애플은 창업자이자 대주주인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에 걸리자 이와 관련된 내용을 공시를 통해 밝혔다. 간접적인 방식이었지만 주주의 의심과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방식이기도 했다.

당시 주주들은 잡스의 암투병 소문이 퍼지자 ‘현재까지 문서화된 CEO(스티브 잡스) 승인계획안을 공개할 것’이라며 주주제안을 냈다. 잡스의 부재로 인한 향후 주가 변동을 우려한 주주들의 목소리였다.

이에 대해 애플은 공시를 통해 “차기 후보자를 내부에서 파악 중이고 관련 방안을 마련해 놓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스티브 잡스의 향후 부재 가능성을 간접적이지만 공시한 셈이다.

당시 애플은 “다만 CEO 승계 후보 물색작업이 경쟁사에 이용될 수 있다”며 구체적인 자료공개를 주총에서 부결시켜줄 것으로 주주들에게 권고하기도 했다.

국내 한 연기금 관계자는 “주요 선진국 증시에서는 이미 포괄주의적 공시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며 “금융위원회가 밝힌 공시제도 개편안은 전반적인 틀에서 선진화에 접근하고 있다. 향후 구체적인 보완점이 지속적으로 나와야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어 “시작부터 포괄주의에 대한 틀을 고정하면 향후 돌발변수에 대응이 어렵다”며 “추가 보완책은 포괄주의 공시제도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수정돼야 한다. 이 경우 기업보다는 투자자 보호 쪽으로 공시제도가 개편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현재 자율적 해명공시제도를 제외하면 구체적인 포괄주의 방향은 나오지 않았다. 아직 개편안 초기인 만큼 추가적인 간담회를 통해 업계와 투자자의 목소리를 더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의 포괄주의 공시체계가 모든 베일을 벗으려면 아직 3년여의 시간이 남았다. 주요 선진 증시의 공시제도는 기업에 자율성과 함께 투자자 보호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채현주 한국거래소 공시팀장은 "새로운 공시제도는 시장건전성 유지와 투자자 보호에 맞춰져 있다"며 "투자자 보호는 기관투자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보 비대칭 위치에 놓여있는 개인투자자를 위해 정보 격차를 줄이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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