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정국을 블랙홀에 빠뜨린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법을 이용할 줄 아는 기업인이었다. 법의 레이더망 밖에서 전방위적 로비를 하기도 했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는 사적 이익을 위한 법안들을 직접 발의했다.
성 전 회장이 국회에 제출했던 법안들과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드러난 현행법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백지신탁제, 정자법 등 ‘무용지물’ = 경남기업 최대주주였던 성 전 회장이 정무위에 몸 담으면서 경남기업 워크아웃을 막기 위한 외압을 행사할 수 있었던 건 공직자윤리법상 백지신탁제도의 허점 때문이었다. 성 전 회장은 경남기업 주식과 직무 관련성이 있는 정무위에서 활동하려면 주식을 신탁하거나 매각해야 했지만, 이를 거부한 채 행정소송을 벌이면서 법원 최종 판결까지 시간을 끌었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백지신탁제 보완에 나서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성 전 회장이 ‘쪼개기 차명 후원금’을 통해 정치권 로비를 폈다는 정황이 드러남에 따라 정치자금법의 문제점도 다시 조명받고 있다.
현행법은 법인과 단체의 후원금 지원을 금지하고 있고, 개인이라도 연간 국회의원 1명당 500만원, 총 2000만원까지만 허용된다. 300만원을 초과하면 고액후원금으로 분류돼 명단이 공개된다. 그러나 성 전 회장의 경우 경남기업 임원들 명의로 여야 의원들에게 최소 7000여만원을 후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출판기념회를 통해 정치자금을 건넸다는 주장도 나와, 정치자금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정자법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한편에선 국회의원들이 모을 수 있는 후원금 한도가 연간 1억5000만원(선거 있는 해 3억원)으로 제한돼 있고, 총선과 대선 비용도 한도가 정해져 있다는 점 역시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계기로 고쳐야 할 규제라고 꼬집는다. 법이 현실과는 괴리가 있는 탓에, 로비 차원이라는 걸 알면서도 정치인들이 불법 정치자금을 받는다는 얘기다. 실제로 선거관리위원회는 국회의원 후원금 한도를 1억500만원에서 2억원으로 늘려야 한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경남기업 회생 위한 법안은 직접 발의 = 성 전 회장은 2년여의 정무위원 시절 경남기업 이익에 부합하는 법안들을 발의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3년 9월 국회에 제출된 ‘자산유동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신용도가 낮은 법인도 우량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자산유동화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신용도가 우량한 법인이라는 요건’을 삭제하는 내용이 골자다. 국회 계류 중인 이 개정안은 금융회사, 공기업, 신용등급 BBB 이상 기업에만 허용되던 ABS(자산유동화증권) 발행을 신용등급 BB 이상 기업에도 허용토록 했다.
문제는 이 법안이 경남기업의 워크아웃 신청 한 달 전에 발의됐다는 점이다. 경남기업은 당시 ABS 등을 통해 차입금 상환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계획이었으나 신용등급이 BBB-에서 BB+로 떨어져, 성 전 회장이 기업 회생을 위해 법안을 발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남기업 워크아웃 과정에서 주채권은행 등 금융기관에 부당 압력을 넣어 성 전 회장에게 특혜를 준 것으로 드러난 금융감독원과 관련한 성 전 회장의 법안도 뒤늦게 입길에 올랐다. 워크아웃 기간 중 성 전 회장은 우체국, 새마을금고, 신협 등 유사 보험기관을 민간 보험회사와 마찬가지로 금감원이 자체 감독할 수 있도록 하는 ‘새마을금고법 개정안’ 등 복수의 법안을 냈다. 정황상 금감원은 경남기업에 특혜를 주고, 성 전 회장은 그 대가로 금감원의 권한을 확대하는 입법으로 ‘짬짜미’를 했다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