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성 MG손해보험 사장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와 많이 닮았다. 하고 싶은 것을 찾아다니며 주위에 물어보기보다 직접 부딪히는 것을 즐기는 야생형 최고경영자(CEO)다.
김 사장은 “가만히 앉아서 일하려는 직원들을 보면 답답하다”고 말한다. 정주영 회장은 ‘이봐, 해봤어?’가 삶의 신조였다며 “일단 도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김 사장은 강조한다.
그는 정주영 회장이 간척지를 만든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집 앞 저수지에서 미꾸라지 등을 잡고, 학교가 끝나면 소를 돌보왔던 시골소년이었다. “저수지에서 수영하고 배고프면 물고기를 낚았다”며 “붕어를 잡아 싸리대에 꽂아 부모님께 드리면 그날 저녁은 온가족이 매운탕 파티를 즐겼다”고 어린 시절을 추억했다.
김 사장은 초등학생 때 한문공부를 열심히 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서당에 줄곧 들렀는데, 먹을 직접 갈아 붓으로 한자를 쓰며 천자문, 동몽선습, 명심보감 등을 공부했다. 한문 공부의 영향으로 풍수에 관심이 생겨 산을 구석구석 뒤지기도 했다. 다른 집안의 산소에도 많이 갔는데, 잘 가꿔진 산소를 보며 명당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그는 고등학교 때 친구 집에서 먹고 자면서 가정교사로 동기를 가르치기도 했다. 당시 학생회장을 맡았던 그가 불량학생인 동기를 개과천선 시킬 적임자로 낙점된 것이다. 김 사장은 “동기의 학습·생활 태도를 바로 잡을 사람을 찾던 중 내가 가정교사 노릇을 하게 됐다”며 “도망가려고 하는 동기를 잡아서 공부를 가르쳤다”고 밝혔다.
대학 때 가르친 중학생은 1년 만에 꼴찌에서 반 7등으로 성적이 올랐다. 가정교사가 매번 바뀌는 바람에 교사 알기를 우습게 아는 말썽꾸러기를 모범생으로 바꿔놓았다고 한다.
그는 “꿀밤도 줘가며 가르친 탓에 그 학생의 어머니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며 “하지만 아이를 변화시킨 보너스로 동해안에 친구들과 놀러간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고교, 대학생 시절 그가 즐긴 도전은 야외 생활이다. 친구들과 군용텐트, 남대문에서 싸게 산 탄띠에 군인수통을 챙기고 워커를 신은 채 설악산에 가 3~5일 먹고 자고를 반복했다.
그는 “여름 밤 산 속에서 잠을 잘 때는 뱀이 많아 담뱃재를 주변에 뿌렸다”며 “지금도 당구, 스크린골프보다 등산 등 야외활동을 좋아한다. 한 달에 3번은 꼭 등산을 한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 태릉 인근에 있던 사격연습장도 김 사장의 즐거운 놀이터였다. 사격연습장에서 플라잉사격, 서서 쏘는 공기소총 등을 즐기곤 했다. “일요일에 가서 500원을 주면 10발을 준다”며“덕분에 군대시절 사격을 못한다고 벌을 받아본 적이 없다. 총을 잘 쏴 주위에서 ‘스나이퍼’로 불렸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에는 보험감독원(현 금융감독원) 임원의 해상보험 강의에 푹 빠졌다. 이후 그는 논문을 쓰기 위해 보험감독원에 직접 찾아가 자료를 받아내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무역을 전공했지만 봉사 등 사회공헌 활동에도 관심이 많아 대학원에서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김 사장은 1957년생으로 한국삼육고, 명지대 무역학과,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1979년 삼성화재에 입사해 삼성화재 상무, 동양화재(현 메리츠화재) 영업본부장, Willis Korea 대표, (주)인풍 상임고문, 리맥보험중개(주) 사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