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수명은 늘어난 데 비해 명예퇴직 등으로 직장을 떠나야 하는 시기는 일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먼저 이런 경험을 한 미국이나 일본 직장인의 경우 젊은 시절부터 후반 인생 설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준비한다. 노후자금 마련을 위한 자산운용설계에 앞서 생각해야 할 것이 생애설계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고용정년 후의 30년 이상의 기간을 좀 더 돈을 벌기 위한 인생을 살 것인가, 자기실현을 위한 인생을 살 것인가, 사회 환원적 인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이 세 가지를 병행해 가며 살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준비를 한다.
우리나라 직장인들도 이런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들어섰다. 현재의 직장에서 고용정년이 가까워졌다고 생각되면 또 다른 직장을 찾아 고용정년을 연장시킬 것인지, 아니면 적당한 기회에 창업하는 등의 방법으로 일의 정년까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자기실현을 위한 인생이나 사회 환원적인 인생을 살 것인지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노후 대비는 평생 현역이라는 생각으로 각자에게 맞는 후반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평생 현역을 하고는 싶지만 막상 실천하려고 하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선 수입을 얻기 위해 재취업하려고 할 경우 마땅한 일자리가 있느냐가 문제이다. 또한 어렵게 일자리를 구했다 해도 현역 시절에 비해 월등히 불리해진 근로조건에 어떻게 적응해 나갈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도 있다.
정년 후의 생활비에 큰 어려움이 없는 사람의 경우 NOP와 같은 사회 환원적인 활동을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언론 등에 소개된 사례는 대부분 성공사례이고 겉모양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막상 시작하고 보면 좌절감을 갖게 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입은 거의 기대를 하지 않고, 일에서 오는 고통을 참고 견디면서, 남들이 고마워하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서 한다는 각오가 없이는 이런 일을 할 수가 없다.
자기실현을 위한 활동이나 취미활동을 하면서 약간의 수입을 얻는 방법도 섣불리 시작했다가는 예상치 못한 굴욕적인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양로원 같은 곳을 찾아가 교통비 정도의 사례만 받고 노인들을 즐겁게 해 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주위에서는 돈벌이를 하는 것으로밖에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자기라면 공짜로는 그런 일을 안 할 텐데, 다른 사람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봉사활동을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 현실적인 이익을 바라고 그런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가 좋아서 예술활동을 하려 한다면 처음부터 주위의 호평 같은 것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정년 후 농촌으로 내려가 농사일을 하려 할 경우에도 같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경험도 별로 없는 사람이 농업에서 큰 소득을 올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채소를 재배하거나 양계를 통해 식비를 줄이고, 집세나 통신비를 줄일 수 있다는 데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농촌생활은 일종의 지출절약형 생활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후반 인생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소신 또는 긍지를 갖는 것이다. 학생 시절에는 교과서나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옳다는 생각을 해야 좋은 학생이 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회사에 근무할 때는 회사가 옳다는 생각으로 일해야 우수한 회사원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년 이후 후반 인생을 설계할 때는 주위의 시선이나 평판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는 게 좋다. 자기가 생각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후반 인생은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후반 인생 설계를 할 때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어떤 형태의 일을 할 것인가를 확실히 정하는 것이다. 수입을 얻기 위해 일할 것인가, 주위로부터 인정받는 사회 환원적인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할 것인가를 확실히 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취미로 하다 보니 저절로 수입이 따라 오거나, 수입을 바라고 일을 시작했는데 그 일이 자신의 취미와 일치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수입도 얻고, 남보기에도 그럴 듯하며, 자신의 취미에도 맞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