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물가 고공행진…서민 한숨 깊어진다

입력 2015-04-1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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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맞벌이를 하는 회사원 양모(32·여)씨는 요즘 장보기가 무섭다. 전날 장을 보기 위해 수첩에 물품 목록과 예상 가격을 적어왔지만 진열된 상품의 가격은 올라도 너무 올라 있기 때문이다. 양씨는 "요즘 마트를 가서 장을 보다보면 제품을 몇 개 구입하지 않았는데도 가격이 많이 나와 당황스럽다"면서 "정부에서는 0%대 물가상승이라고 하지만 체감 물가와의 괴리감은 여전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2. 경기도 남양주시에 사는 대학생 이모(24·여)씨는 요즘 친구 만나기가 꺼려진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친구들과 카페에서 디저트를 사먹는데 최근에는 만원으로 식사나 디저트를 해결하기 점점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음식이나 화장품 가격이 부담스럽다. 웬만한 브랜드숍 화장품의 가격도 만만치 않게 느껴진다. 체감하기에 화장품 가격도 점점 오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3.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회사원 윤모(37)씨는 최근 아웃렛을 찾아 옷을 산다. 윤씨는 "예전에는 백화점을 주로 방문해 의류를 샀지만 정장 등 남성복 같은 경우 유행을 잘 타지 않기 때문에 겨울에 여름 시즌 의류를 사는 식으로 돈을 아끼고 있다"고 밝혔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0%대라는 정부 발표에도 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연초부터 담뱃값이 큰 폭으로 오른 데다 쇠고기 등 생필품 값이 줄줄이 인상됐다. 시내버스·지하철 요금도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자영업자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직장인들이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나오는 등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급속히 악화된 것도 체감물가가 높게 느껴지는 주된 이유다.

◇소·돼지고기 오르자 닭고기·수입육 매출 ↑

한우와 한돈 가격은 소비자들 체감물가를 높이는 주된 요인이다.

한우 가격은 올 들어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2012년부터 한우 수급 조절의 일환으로 진행된 암소 감축 사업으로 인해 송아지 생산량이 줄며 사육수가 감소한 탓이다.

한우육류유통수출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한우(1㎏)의 월평균 가격은 매월 지속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4월(1~15일) 들어 한우 가격은 지난해 같은 때에 비해 6.1%가량 높아졌다.

축산물 품질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돼지고기 1㎏당 가격도 1월 4614원에서 꾸준히 상승해 4월 들어 4832원까지 올랐다.

이처럼 올 들어 국산 소고기와 돼지고기 값이 고공행진을 거듭하자, 대체제인 닭고기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육 등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 닭고기는 지난 1~14일 도매가 기준 1kg당 3295원으로 지난해 같은 때 보다 7.3% 값이 내렸다.

이마트에 따르면 1분기(1~3월) 닭고기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22.5% 늘었다.

롯데마트의 경우 올해 1월1일부터 이달 14일까지 한우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12.7% 감소했지만, 닭고기 매출은 30.8% 증가했다. 돼지고기, 닭고기, 수입육 등 대체 상품들의 매출도 최대 85.8% 가량 상승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본격적인 나들이철이 시작됐지만 한우 가격 고공행진에 소비 심리가 많이 위축된 상황"이라며 "육류 수요가 닭고기 쪽으로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커피·담배·아이스크림·햄버거 줄줄이 인상

기호식품인 담배, 커피, 아이스크림 등의 가격이 줄줄이 인상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7월 스타벅스·커피빈·할리스커피·카페베네 등 커피전문점이 우르르 가격을 올린데 이어 올 1월1일에는 담뱃값도 1값당 2000원씩 올랐다. 최근에는 햄버거와 아이스크림도 가격인상에 합류했다.

롯데제과, 빙그레, 해태제과, 롯데푸드 등도 유통 채널별로 아이스크림 가격 인상 협상에 들어가 공급가를 올렸다. 메로나·스크류바·돼지바 등 나무 스틱 바(bar) 타입의 아이스크림 가격이 6~16%정도 인상돼 약 100~200원 올랐다.

메로나, 비비빅, 엔초 등 14종의 바 아이스크림을 판매하고 있는 빙그레의 경우는 채널별로 공급가 가격이 다르지만 약 16% 정도 인상될 전망이다. 업계 1위 롯데제과도 스크류바, 왕수박바, 죠스바, 메가톤바 등 11종의 가격을 6% 정도 인상한다. 롯데푸드도 보석바, 옛날아맛나, 돼지바, 알껌바 등 10종의 가격을 10% 이상 인상한다. 업계 3위인 해태제과 역시 가격 인상을 검토 중이다.

햄버거도 원재료 가격 상승과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가격이 오르고 있다.

롯데리아는 버거 14종과 디저트 8종의 가격을 100~300원, 평균 3% 올렸다. 인상품목은 버거류 14종, 디저트류 8종 등으로 100원에서 300원 인상되고, 평균 인상률은 약 3.0% 수준이다. 이에 대표 메뉴인 불고기버거와 새우버거의 경우는 3300원에서 3400원으로 값이 오른다.

지난해 12월 버거킹 역시 대표 메뉴인 와퍼 가격을 5000원에서 5400원으로 올리는 등 햄버거 메뉴 가격을 8.3%까지 인상했다. 맥도날드도 '빅맥', '더블불고기버거' 등 버거류 10개와 아침 메뉴 5개 등 일부 제품의 가격을 평균 1.89% 인상했다.

냉동식품 역시 가격이 올랐다. 돼지고기 가격상승이 주된 이유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말 순돼지등심돈까스는 6980원에서 7480원으로 7.16%, 백설군만두는 7480원에서 7880원으로 5.14%, 비비고왕만두는 7980원에서 8450원으로 5.88%, 백설만두(510g 2봉)는 5980원에서 6180원으로 3.44% 각각 올렸다.

◇대중교통·보험·상하수도 '다 올라'

이런 상황에서 들려오는 공공요금 인상 소식은 서민의 마음을 더욱 움츠리게 한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에 따르면 서울시는 시내버스 요금을 150원, 지하철 요금을 250원, 광역버스 요금을 450원 인상하는 방안을 시의회에 제출했다.

전국 상하수도 요금과 수도 요금도 오르고 있다.

안동시는 4월부터 하수도 요금을 34.6%, 상수도 요금을 10% 올렸다. 전주시 역시 하수도 요금을 36% 인상했다.

제주도도 오는 5월부터 상수도 요금을 9.5%, 하수도 요금을 27% 각각 올릴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료와 액화석유가스(LPG) 가격도 인상됐다.

LPG 수입·판매사인 E1은 프로판과 부탄 공급가격을 4월부터 ㎏당 38원씩 올렸다.

생명보험사들은 4월부터 암 발생률이 증가한 것으로 보는 새로운 경험생명표를 상품에 적용, 보장성 보험료를 올리고 있다.

◇체감물가 '3.3%'…"불황이 문제"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16일 내놓은 '최근 체감 경기의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들의 체감 물가상승률 평균은 3.3%였다. 정부 통계치인 0.8%보다 2.5%p나 높은 수치다.

정부는 '디플레이션(경기침체와 물가하락)'을 우려하고 있지만, 서민들은 현 상태가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서민들의 체감물가가 높아진 주된 이유는 불황이다. 대기업들이 장기 불황을 우려,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금융권에서만 지난해 2만4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11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의 증가속도가 가팔라지면서 가구의 원리금 상환부담이 커진 것도 문제다.

가계부채 증가세를 우려한 정부가 대출구조를 원리금 분할상환으로 바꾸면서 가계의 소비여력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금리는 낮아졌지만 내달 내야하는 원금이 늘었기 때문이다.

내수부진으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늘어난 것도 문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체감경기가 실제 경기보다 훨씬 부정적인 만큼 소비여건 개선과 함께 체감경기 개선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가계부채 증가로 인한 원리금 상환부담이 소비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며 "부채를 증가시키는 정책보다 자산 형성을 위한 인센티브를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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