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정 작가를 중심으로 약 1년 이상 각색 과정을 거쳤습니다. 원작을 외우다시피 할 정도로 분석을 끝냈고요. 그 다음 만화가 가진 장점들에 대해 원작자처럼 전부 다시 조사를 했습니다. 종합상사나 바둑에 대해 밀접한 취재를 했지요.”
드라마 방송 이후, 원작 만화는 누적 판매부수 200만권을 훌쩍 넘겼다.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의 만족도가 원작으로 이어져 선순환 효과를 자아냈다. 그만큼 드라마 ‘미생’은 원작 만화와 구별되는 콘텐츠로서 가치를 입증 받은 것이다.
“장그래는 원래 갖고 있지 않았던 처연함이 생겼고요. 한석율은 훨씬 입체적인 역할로 튀어나왔지요. 모든 배역들이 생기가 생겼어요. 이는 균형감을 유지하려는 태도 덕택이었습니다. 원작의 성공에 취하거나, 그 무게에 눌리지 않으면서도, 연속극이란 포맷에 맞게끔 고민했습니다.”
연출의 김원석 PD가 기획과 집필 단계부터 깊숙이 개입해, 정윤정 작가와 시너지를 도모했다. 이 PD는 “이 과정에서 ‘미생’이 드라마 자체로서 매력적으로 도드라질 수 있도록 계속 초점 맞추었다”고 강조했다.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만화를 드라마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에서 안팎으로 우려도 컸다.
“(기획 당시) ‘내레이션 때문에 (드라마가) 안 될 것’이란 말도 들은 적 있죠. 내레이션이 원작엔 무척 많이 들어 있는데, 이를 표현하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내레이션을 버린다면 ‘미생’이 아니고, 모두 살리자니 드라마로 보기 힘들었지요.” 결국 제작진은 내레이션의 핵심을 살리는가 하면, 정서를 캐릭터에 투영시키는 것으로 작품의 맛을 살렸다.
이처럼 ‘미생’의 호평 이후, 업계에서 만화를 드라마로 각색하는 작업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원작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는 이제 보편화가 됐고, 어쩔 수 없는 대세이지요. 그러나 아무리 시대적 흐름이라 할지라도, 제작진으로서 진솔하게 확신을 가져야 할 부분이 따로 있습니다. 그 원작이 이 시대에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 오늘날 사람들이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자기 검열해봐야 합니다. 드라마는 보편적인 장르기 때문에, 해당 작품이 ‘지금도 유효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많이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웹툰이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 범람한다고 해도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