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에 한국과 미국 간 유정용 강관 무역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패널(재판부)이 설치됐다. 한국산 세탁기에 이어 철강 제품에 대해서도 반덤핑 관세 조치를 둘러싼 미국과의 재판 전쟁이 본격화된 것이다. 유정용 강관은 원유, 천연가스 등의 시추에 쓰이는 파이프로 최근 북미 셰일가스 개발 붐으로 수요가 급증가하고 있다.
16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 정부의 한미 간 유정용 강관 분쟁해결을 위한 패널 설치 요청이 정식 접수됨에 따라 지난달 24일 WTO 분쟁해결기구(DSB) 회의에서 패널 설치가 완료됐다.
미국 상무부는 작년 7월 한국산 유정용 강관에 대해 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으며 이에 대해 정부는 작년 12월 22일 이를 WTO에 제소한 뒤 올해 1월 21일 분쟁해결절차의 첫 단계인 미국 측과 양자 협의를 진행했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제소일부터 60일 이내에 합의하지 못하면 제소국은 패널 설치를 요청할 수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피소국 권한으로 지난달 10일 미국이 한 차례 패널 설치 거부 의사를 밝히긴 했지만 2차 요청 시 자동 설치 규정에 따라 결국 재판부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패널 설치가 완료되면 20일 이내 분쟁 당사자들은 패널 위원 선정을 논의해야 한다. 이때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무총장 직권으로 임명하게 된다. 하지만 미국 측이 관련 일정을 최대한 지연시키려는 입장이어서 위원 선정에 대한 합의도 불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 문제는 이미 미국과의 분쟁절차가 개시된 만큼 앞으로도 타협의 여지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WTO 분쟁해결절차 대로라면 패널위원 구성 후 패널심리, 최종보고서(판결문)이 나오기까지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 기간 동안 국내 업계는 미국 측이 최대 15.75%에 이르는 고율의 반덤핑 관세 부과한 데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할 수밖에 없다. 국내 유정용 강관 수출 업체들이 납부해야 하는 반덤핑 관세는 연간 1억 달러(한화 약 1092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최근 미국 내에서 다른 철강제품에 대해서도 덤핑조사를 요청하는 동향도 감지되는 등 경쟁력이 약한 자국의 제조업에 대한 보호무역주의의 강도가 갈수록 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수출업체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이 부당한 수입규제 조치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