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영훈 작곡가, 그리움에 고함 [이꽃들의 36.5℃]

입력 2015-04-15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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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영훈 작곡가(1960~2008)(사진=뉴시스)

‘봄바람’을 타고 싱긋한 미소를 자아내는 멜로디가 찾아왔다. 이따금씩 샐쭉거리는 리듬과 보컬이 귀를 즐겁게 한다. 그런데 왜일까. 만연한 봄기운에도 가을 어스름께의 향취가 자꾸만 그리워지는 건 말이다.

1985년 이문세 3집 타이틀곡 ‘나는 아직 모르잖아요’는 발매 당시 반향을 일으켰다. 이미 2년 전 이미 가요계 데뷔해 앨범을 냈으나, 이렇다 할 반응을 얻지 못했던 이문세였다. 그런 그가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는 물론, 150만장의 음반 판매 기록을 세웠다. 비로소 이영훈 작곡가와 합심한 3집을 통해 우뚝 선 것이다.

이영훈 작곡가 특유의 서정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멜로디 라인은 따스하지만 고독한 이문세의 음색에서 보다 입체적인 감성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또, 이문세의 담백한 창법은 유려하고 진실 되게 적어 내려간 이영훈의 가사와 만나 깊은 울림을 배가시켰다.

이토록 절묘한 시너지가 있을까. ‘소녀’, ‘사랑이 지나가면’, ‘붉은 노을’, ‘옛사랑’ 등 쏟아낸 곡마다 대중의 심부를 쳤다. 덕수궁 돌담길, 정동길을 지나면 으레 ‘광화문 연가’의 노랫말을 흥얼거리고, 흰 눈에 덮힌 길가에 바람이라도 스며들 때면 ‘옛사랑’의 한 구절을 읊조리게 했다. 팝 발라드의 전형으로 대중성을 증명한 ‘빗속에서’, 무르익은 완성도로 평가 받는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등도 대표적이다.

작곡가 이영훈은 세상과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존재감은 돈독하다. 그 배경에는 후배 뮤지션들의 잇따르는 리메이크가 있다. 신선한 감각으로 무장한 후배들의 음색은 이영훈의 멜로디와 가사를 녹여내도 강력한 공감대를 발휘한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불변의 가치를 지니는 고전(Classic)임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아이유는 각종 라디오와 ‘유희열의 스케치북’ 등 음악 프로에서 ‘옛사랑’을 불러 크게 호평을 얻은 바 있다. 이를 통해 아이유는 오히려 청중의 세대를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를 통해 ‘사랑이 지나가면’을 자신만의 색깔로 덧입혔다. 아이돌 그룹 빅뱅은 일찍이 ‘붉은 노을’을 리메이크해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섰다.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엠넷 ‘슈퍼스타K2’의 장재인이 바닥에 주저앉아 기타를 메고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의 첫 소절을 나지막히 내뱉은 순간은 시청자의 뇌리에 깊이 박혀있다. 또, 재미교포 출신의 존박이 멋들어지게 펼친 ‘빗속에서’도 이색적이다. 최근 MBC ‘나는 가수다3’에서는 서른 다섯의 젊은 후배 가수 하동균이 인생과 이별을 훑어내는 가사의 ‘나는 아직 모르잖아요’를 묵직하게 소화해 경쟁력을 배가시켰다.

장르를 넘어선 힘도 막강하다. 이영훈 작곡가의 곡을 주크박스 뮤지컬로 엮어낸 ‘광화문 연가’는 창작극의 성공 사례로 남았다. 스토리와 어우러져 3000석 이상의 대극장에서 울려 퍼진 ‘시를 위한 시’, ‘그녀의 웃음소리 뿐’, ‘사랑은 기억보다’는 원곡의 서정적 감성을 새삼 입증했다. 수많은 리메이크와 장르 각색이 넘쳐나지만, 이 가운데 긍정적인 평가를 얻어낼 수 있는 건 원곡 자체가 스스로 생동하는 까닭이다.

가을을 닮은 그의 노래에는 쓸쓸함이 묻어있다. 섣부르게 다가서거나, 나를 돋보이지 않는 가사는 요즘 없는 쑥스러운 매력을 지녔다. 직설적이고 의미 없는 가사 나열과 반복으로 자극성만 높이는 최근 트렌드와 거리가 멀다. 클래식을 가미한 멜로디는 듣는 풍미마저 돋운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

후크송이나 섹시 콘셉트가 주름 잡는 국내 대중음악계는 분명 혼탁하다. 중견 뮤지션들의 설 자리가 적은 것도 사실이다. 새로운 방향(New Direction) 모색도 물론 필요하다. 무엇보다 거듭나기 위한 세대 간 화해와 공감대 유도는 고전 명곡의 가치를 채색하고 바로 보는 작업으로부터 시작할 일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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