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4월 13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됐다. 이틀 전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 회의를 통해 임시헌장 10개 조를 채택한 뒤 한성임시정부와 통합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선포한 것이다. 각료에는 임시의정원 의장 이동녕(李東寧), 국무총리 이승만(李承晩), 내무총장 안창호(安昌浩), 외무총장 김규식(金奎植), 법무총장 이시영(李始榮), 재무총장 최재형(崔在亨), 군무총장 이동휘(李東輝), 교통총장 문창범(文昌範) 등이 임명됐다.
이어 6월 11일 임시헌법을 제정, 공포하고 이승만을 임시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한편 내각을 개편했다. 9월 6일에는 노령(露領)정부와 통합하고 제1차 개헌을 거쳐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했다. 그러나 1926년 9월 이후 정부 형태는 의원내각제가 주류를 이루었다.
임정의 행로는 모질고 험난했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옮겨 다니느라 상하이에서 항저우(杭州)-자싱(嘉興)-하이옌(海鹽)-전장(鎭江)-한커우(漢口)-창사(長沙)-광저우(廣州)-류저우(柳州)-충칭(重慶)까지 무려 1만3000리의 대장정을 벌였다. 충칭 청사는 1932년 윤봉길(1908~1932) 의사의 훙커우(虹口) 공원 의거 이후 일제의 추격을 피해 이동한 마지막 거점이다.
임정의 상징 인물인 백범 김구(1876~1949)는 임정이 선포된 당일 상하이에 도착한 뒤 내무위원 경무국장 등을 거쳐 1939년 주석으로 취임했고 1944년 4월 개정된 헌법에 따라 재임명됐다. 1937년 11월부터 1938년 7월까지 머무른 창사의 임정 건물에는 ‘독립정신’(獨立精神)이라는 백범의 행서 휘호가 걸려 있다. 해방 후인 대한민국 30년(1948년) 5월에 쓴 글씨다. 백범의 라이벌이었던 우남 이승만(1875~1965) 전 대통령도 29세 때인 1904년 감옥에서 ‘독립정신’이라는 책을 쓴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