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코트라(KOTRA) 다롄 무역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기업이 한국기업을 인수합병(M&A)한 사례는 총 5건으로, 금액상으론 6억6111만 달러에 달한다. 금액 기준으로는 전년 대비 무려 30배나 급증했다. 반면, 지난해 한국기업의 중국기업 M&A 규모는 252만 달러로 전년 대비 98.3% 급감했다.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중국자본들은 이같이 국내 알짜 중소기업들을 최근 1년 새 속속 사들이고 있다. 최근 ‘또봇’으로 유명한 국내 완구기업인 영실업이 중국계 펀드로 매각이 결정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영실업 대주주인 홍콩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헤드랜드캐피털파트너스는 지난달 말 중국계 펀드 퍼시픽얼라이언스그룹(PAG)을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매각 금액은 약 2300억~25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실업은 1980년 김상희 전 대표가 설립한 국내 대표 완구기업이다. 2012년 헤드랜드로 매각된 이후 변신완구로봇인 ‘또봇’으로 유명세를 치르면서 지난해 매출 1100억원을 기록하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다. 최근엔 또봇을 앞세워 중국시장에도 본격 진출했다. 완구업계 관계자는 “중국계 펀드로 매각되는 시점 전후로 영실업이 중국 진출을 선언했다”며 “이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기점으로 향후 영실업의 중국 완구시장 공략은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대표 유아복 제조업체인 아가방앤컴퍼니의 매각도 중국자본의 국내 기업 인수의 대표적인 예다. 중국 랑시그룹은 지난해 아가방을 320억원에 인수하며 국내 유아용품업계를 뒤흔들었다. 한국 유아용품이 높은 브랜드 파워, 신뢰도 등으로 중국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을 활용, 아가방 인수를 통해 자국 유아용품시장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중국자본들은 현지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국내 의류 중소기업들의 인수에 눈독을 들여왔다. 아가방 이 외에도 2013년 유아복 브랜드 ‘블루독’과 ‘밍크뮤’를 보유한 서양네트웍스는 홍콩기업 리앤펑으로 1960억원에 인수됐고, 2012년 국내 패션기업 아비스타의 경우엔 중국 디샹그룹이 지분 37%를 사들이기도 했다. 중국인들의 눈에 고급스러운 한국의 의류 브랜드들이 속속 팔리고 있는 셈이다.
또한 드라마, 영화와 같은 한류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부가적인 산업도 중국자본들의 쇼핑 리스트 중 하나다. 중국 문화-엔터테인먼트기업인 완다그룹은 최근 국내 시각효과(VFX) 전문기업 덱스터에게 1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완다그룹이 부동산이 아닌, VFX 분야 국내 기업에 투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덱스터는 누적관객수 870만명을 동원한 영화 ‘해적:바다로 간 산적’의 고래, 영화 ‘미스터고 3D’에 나왔던 고릴라 등의 컴퓨터그래픽(CG)를 선보이며 업계에서 우수한 기술력으로 소문난 중소기업이다.
이 같이 중국자본들의 국내 중소기업 인수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자금줄이 막혔던 기업들에게는 당장 가뭄의 단비가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국내 핵심 기술력들이 중국으로 흘러들어가면서 향후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중소기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중소기업들의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과거 중국 상하이차에 인수됐다가 기술유출 곤욕을 치뤘던 쌍용차의 전례도 있지 않느냐”면서 “외국자본에 흔들리는 국내 벤처ㆍ중소기업 생태계를 보다 안정적인 구조로 바꿀만한 정부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