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롯데그룹 오너가 내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그룹 계열사 내 등기임원직에서 모두 해임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 재계에서는 롯데그룹의 승계구도가 급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반면 차남인 신동빈 회장은 지배구조상 중요한 위치에 있는 계열사의 등기임원으로 선임되면서 롯데그룹 승계구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신동빈 회장 지주사 전환 직접 시동 걸까 = 최근 롯데그룹의 지주사 전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일이 발생했다. 신동빈 회장이 국내 롯데그룹의 지배구조상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호텔롯데의 사내이사로 선임된 것이다.
이에 따라 신동빈 회장은 호텔롯데뿐만 아니라 부산롯데호텔과 롯데쇼핑, 롯데제과, 롯데케미칼, 롯데정보통신,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 FRL코리아, 대홍기획 등 10개 계열사 사내 이사직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롯데그룹 전체의 경영권과 지배구조를 개편할 수 있는 계열사들의 이사회를 모두 장악했음을 의미한다. 호텔롯데의 사내이사 선임은 지주사 전환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내 재계의 승계는 단계별로 경영권을 물려준 후 지배권을 넘기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이는 대외적으로 경영능력을 검증 받은 후 총수 자리를 넘김으로써 그룹 승계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또 경영권보다 지배권을 먼저 넘겨받게 될 경우 대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규제들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점도 작용했다.
신동빈 회장이 이번 호텔롯데 사내이사 선임을 통해 사실상 신격호 총괄회장의 경영권을 완전히 승계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신동빈 회장이 국내 롯데그룹 지배구조상 최정점에 있는 호텔롯데의 이사회를 장악하게 됨으로써 1인 총수 체제를 위한 지주사 전환을 의도한 바 대로 추진할 수 있는 포석을 두게 됐다. 호텔롯데는 롯데쇼핑(8.8%), 롯데리아(18.7%), 롯데칠성(5.9%), 롯데제과(3.2%) 등 그룹 순환출자구조의 연결고리를 지배하는 회사다.
또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본뿐만 아니라 국내 계열사의 등기임원에서도 물러나면서 사실상 한국과 일본의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핵심 계열사의 이사회를 모두 장악하게 된 셈이다.
게다가 호텔롯데는 일본 롯데그룹과의 연결 고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신동빈 회장이 신동주 전 부회장의 간섭 없이 이사회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한국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를 완성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신동빈 회장이 호텔롯데를 정점으로 지주사 전환 등을 통해 복잡하게 연결된 그룹내 순환출자구조 해소를 위한 지분정리를 본격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통합 승계보다 시간 벌어주기” = 재계에서는 신동주 전 부회장의 해임과 신동빈 회장의 호텔롯데 등기임원 선임을 놓고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이 신동빈 회장에게 통합 승계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통합 승계는 최악의 형제의 난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신동빈 회장 견인론’이 현실적이라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신격호 회장이 신동빈 회장을 한국 롯데그룹 차량의 운전석에 앉히고 신동주 부회장을 일본 롯데그룹호의 운전석에서 조수석으로 자리를 이동시켜 두 차량을 견인 고리로 묶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신동빈 회장이 일본 내 지배력이 큰 신동주 전 부회장의 드라이브를 완전히 배제하고 한국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완성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또 지배구조 개편 마무리와 함께 두 차량의 견인고리를 풀고 신동주 전 부회장을 일본 롯데그룹의 운전석에 앉히게 되면 기존의 형제간의 계열분리의 셈법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
재계 관계자는 “통합 승계를 위한 형제간의 자리 변화보다는 신격호 회장이 한국 롯데그룹의 지배권을 신동빈 회장에게 안정적으로 물려주기 위해서는 신동주 전 부회장의 입김을 배제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국 롯데그룹의 확고한 지배구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동빈 회장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 연결고리에서 당분간 자유로워야 한다”고 밝혔다.
또 “신격호 회장이 이를 감안해 신동빈 회장에게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는 임시적인 이사회 구성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의 지배권의 시발점인 일본 롯데그룹이 사실상 형제간 계열분리에 알맞게 지배구조 개편을 마무리한 점도 이와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는 부분이다.
신격호 회장은 지난 2007년 이미 일본 롯데그룹에 광윤사라는 유니콘의 뿔을 두고 밑에 일본 롯데홀딩스와 롯데전략적투자회사를 설립, 모든 현지 계열사를 이들 회사 아래 두게 했다.
또 일본 롯데그룹에서 한국 롯데그룹 주력 계열사들의 정점에 있는 호텔롯데로 이어지는 출자구도 역시 일본 비주력 계열사를 지배하는 롯데전략적투자 중심으로 재편했다. ‘일본 신동주’와 ‘한국 신동빈’ 의 형제간 분할 구도 밑그림이 그려진 셈이다.
이런 가운데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해임되기 직전 현지 언론 등을 통해 독자적으로 사업구조 개편을 추진하려 했던 정황이 확인됐다.
이는 한국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를 개편해야 하는 신동빈 회장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호텔롯데가 한국 내 계열사들을 지배하는 역할을 하지만 정작 일본 롯데그룹의 지배를 받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호텔롯데가 지주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이끌고 있던 일본 롯데그룹측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셈이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측은 이렇다할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