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생활가전 업계에서 대기업 삼성과 LG의 독주를 혈혈단신 막고 있는 중견기업이 있다. 오랜 역사와 고집스런 기술력으로 제습기를 국내 시장에 활성화시킨 위닉스가 그 주인공이다. 위닉스는 국내 제습기 시장에서 대기업들을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엔지니어 출신 윤희종 회장이 1973년 설립한 위닉스는 제습기를 포함한 환경·생활가전제품을 생산하는 중견기업이다. 현재 윤 회장의 아들인 윤철민 대표가 사장을 맡아 경영을 이끌고 있다. 윤 회장이 뼛속 깊이 엔지니어 출신인데 반해, 윤 대표는 2000년부터 위닉스 제품의 영업전문회사인 위니맥스를 이끌어온 영업·마케팅 전문가다. 위니맥스는 지난해 위닉스에 흡수합병됐다. 1세대 위닉스가 기술력에 초점을 맞춰졌다면, 2세대엔 기술력과 마케팅이 결합된 경영에 방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는 이유다.
최근 판교 영업본부에서 만난 윤 대표는 윤 회장이 키워낸 위닉스의 기술력에 대해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위닉스의 본질은 제습기의 핵심인 ‘열교환 기술’이라는 믿음과 철학이 분명했다. 실제 이날 인터뷰 직전까지도 윤 회장과 회사 경영과 관련해 논의하는 등 소통도 이어가고 있다.
윤 대표는 “1973년부터 지금까지 한우물만 파고 있다”며 “위닉스의 특징은 물과 공기 관련 제품에 주력하고, 잘 만들 수 있도록 전문화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회장님이 잘 만들어 놓은 기반에 내가 가진 영업·마케팅 역량을 접목하고, 조직통합 과정에 충실해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윤 대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위닉스를 이끌어왔다. 하지만 윤 대표의 취임 첫 해는 순탄치 못했다. 연초 장밋빛으로 전망됐던 국내 제습기 시장이 마른장마의 영향으로 기대보다 성장하지 못하면서 위닉스의 실적에도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3분기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을 정도다.
윤 대표는 “지난해 제습기 시장은 기대치보다 못했을 뿐이지 성장은 했다”면서도 “문제는 많은 업체들이 너도나도 뛰어들면서 과다 경쟁을 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해의 경험으로 보면 올해부턴 과다경쟁 상황이 교통정리가 될 것으로 본다”면서 “다만 지난해 한 곳에 몰리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는 것을 배운 만큼, 올해는 매출과 아이템을 다각화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위닉스는 지난해 실적 악화 속에서도 시장점유율 1위를 굳건히 유지했다. 80여개 브랜드가 경쟁했지만 점유율과 선호도, 인지도에서 모두 앞섰다. 품질은 물론, 지난해부터 시작한 5년 무상품질보증 등 서비스 역량을 강화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표는 “올해 역시 적어도 우리가 가진 시장 1위의 위치는 사수할 것”이라며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개발·생산에 빨리 적용될 수 있도록 무엇보다 효율성을 더욱 높여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올해는 연초부터 수출시장에서의 낭보가 잇달아 들리면서 위닉스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우선 2011년 중단됐던 미국 최대 유통업체 시어스(Sears)의 자체 브랜드 ‘캔모어(Kenmore)’를 상대로 다시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수출에 성공했다. 위닉스 대신 OEM 공급을 진행했던 타 국가 기업들의 제품 품질이 비교적 떨어졌던 탓에 시어스 측이 먼저 제품 공급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표는 “과거 국내 제습기 시장이 커지면서 생산물량이 부족해 중단했던 미국시장 공급을 다시 재개키로 했다”며 “캔모어에 이달 말부터 선적을 시작할 계획”고 설명했다. 이어 “시카고에 미국법인을 설립한 지 10여년이 됐고, 현지에서 위닉스 브랜드는 베스트셀러 상위에 올라 있을 정도로 인지도도 올라갔다”고 덧붙였다.
올해 윤 대표가 더욱 주목하고 있는 곳은 중국이다. 올 초 중국 가전 전문업체인 오우린(OULIN)그룹과 5000만 달러 규모의 공동브랜드 판매계약을 체결한 데 따른 것이다. 미세먼지 등으로 공기청정기 시장이 뜨고 있는 중국에서 자체 브랜드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가 크다. 현재 국내 중소 생활가전 기업 중 OEM, 제조자개발생산(ODM)이 아닌, 자체 브랜드로 해외시장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는 곳이 드문 것을 감안하면 주목할 만한 행보다.
윤 대표는 “OEM 수출은 공급 브랜드가 떠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한계성이 있다”며 “이에 계약을 진행할 때부터 오우린 측에 책임감을 강조, 강력히 공동브랜드를 주장해 계약을 성사시켰다”고 말했다.
이번 오우린과의 계약 체결은 윤 대표의 역할이 컸다. 영업 경험이 많은 윤 대표는 오우린 측과 계약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직접 현지로 달려가 신속하게 대응하며 우선적으로 ‘관계’ 다지기에 힘썼다. 다행히 오우린 측 경영진과 방향이 잘 맞았고, 공동브랜드 추진이라는 성과도 내게 됐다. 무엇보다 이번 계약은 지난해 실적 악화로 침체돼 있는 임직원들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윤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침체돼 있을 때는 조직에 동력을 부여해야 하는데 이번 캔모어, 오우린과의 계약은 회사 분위기 상승에 큰 도움을 줬다”며 “특히 오우린 공급 물량은 다음달부터 선적을 시작할 예정이어서 내부적으로도 기대가 크다”고 언급했다.
위닉스에 따르면 이 회사의 수출 비중은 매출 대비 약 20% 정도다. 윤 대표는 올해 제습기 시장 수성과 함께 수출 비중을 30~4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그는 “과거 7000만불 수출탑을 수상한 기세를 몰아 올해는 중국, 미국 등을 중심으로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며 “매출 역시 지난해보다 더 성장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신감이 넘치는 윤 대표이지만, 국내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대기업들의 공세는 올해도 걱정거리 중 하나다. 최근 몇 년 새 제습기, 공기청정기 등 환경가전시장 규모가 커지자 자본력으로 중소업계를 압박하고 있어서다. 대기업들의 과도한 할인판매, 끼워 팔기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중소 생활가전업체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시장을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윤 대표는 ‘페어플레이’를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들이 자본력을 앞세워 싸우자고 하면 중소기업들은 이길 수 없다”며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적어도 똑같은 출발선상에서 겨뤄야 하지 않겠나”고 반문했다. 이어 “이것이 현 정부의 중소기업 육성, 상생경영 등의 방향과 맞는 부분”이라면서 “다만, 중소 업계에서도 우리가 이겨내야 할 문제라는 의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