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6시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한 건물. 하나 둘씩 모이는 사람들의 손에는 저마다 커다란 악기 가방이 들려 있다.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부터 오보에, 바순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먼저 온 순서대로 자리를 잡고 앉아 악기를 꺼낸다. 그러고는 조율을 시작하며 각자의 소리를 찾는다. 일주일간 가방 속에서 잠들어 있던 악기에 대한 일종의 인사다. 활로 현을 가르고, 가느다란 관 속에 숨을 불어넣으며 악기를 깨운다.
악기를 어루만지는 손들은 전날까지도 퍼렇고 누런 돈을 하루 종일 굴렸다. 신한금융지주의 20명 남짓한 인원은 매주 토요일 이곳에 모여 3시간 동안 돈 대신 악기를 손에 들고 합주를 한다. 그들은 ‘신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단원들이다.
단원들은 2011년 4월 처음 만났다. 오랜 시간 꾸준히 악기를 연주해 온 사람, 어린 시절 잠시 악기를 배운 사람, 악기의 ‘악’자도 모르는 사람 등이 모여 오케스트라 동호회를 창단, 올해 3월 30명 정도의 단원이 활동 중이다. 현악기와 관악기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타악기와 금관악기도 들어오면서 규모가 커졌다. 편성이 큰 오케스트라로 나날이 변모하고 있다.
신한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매년 7월 정기연주회를 연다. 이를 위해 3월부터는 격주로 토요일에 모여 3시간씩 합주 연습을 하고, 4월부터는 본격적 연습에 돌입해 매주 토요일 모임을 갖는다. 그렇게 연주회를 치르고 난 뒤 잠깐의 휴식기를 거쳐 10월부터 2월까지는 한 달에 1~2회 모여 연습을 한다.
하지만 일과 병행하며 악기를 연습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창단 멤버인 선릉중앙금융센터 이광미 과장은 “한 번의 연주회를 위한 준비 과정이 정말 힘들다”라면서 “자기 시간도 써야 하고, 개인 레슨을 통해 악기 연습도 따로 해야 한다. 연습은 길고, 연주회는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단원들은 정기 연주회 외에도 소규모의 연주회를 종종 개최한다. 연말에는 실력 향상에 초점을 맞춰 가벼운 소품곡으로 미니 음악회를 진행하고, 연초에는 봉사활동 차원으로 신년음악회를 갖기도 한다.
이 과장은 2013년 봉사활동차 노인요양병원을 찾아가 소규모 음악회를 연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별 기대 없이 갔어요. 자원봉사 시간을 채워야겠다는 이기적 마음도 사실 있었죠. 그런데 보잘것없는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좋아해 주시는 환자분들의 모습을 보고 숙연해졌어요. 오히려 제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였다. 신한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지난해 봉사활동 차원으로 음악회를 가졌고, 올해는 서울 응암동의 성당에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어린이를 위한 음악회를 열 예정이다.
단원들이 꼽는 오케스트라의 백미는 ‘조율의 희열’이다. 오케스트라는 ‘혼자’ 잘 하는 것보다 ‘함께’ 맞춰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서로 어긋난 부분을 조율하면서 때로는 감정이 상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합주의 한 과정이다. 이 과장은 “맞춰 나갈 때의 짜릿함이 있다. 직장 다니면서 일할 때 느끼는 성취감과는 또 다른 감정”이라면서 “악기 연주로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도 풀고, 취미활동을 공유하면서 인간관계도 확장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전했다.
신한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신한금융 내 동호회 중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영향력은 비교적 세다. 매년 300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들였고, 올해는 400명 관객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이 과장은 “매년 연주회를 꾸준히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다”며 “많은 사람이 우리를 통해 클래식과 더 가까워지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