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를 필두로 한 영화는 9개 중 8개가 망한다는 흥행 통계가 아쉽다. 여배우라서가 아니라 시나리오 등 부수적인 요인 때문인데 그렇게 인식하는 업계의 통념이 안타깝다.” 최근 드라마 ‘펀치’를 통해 역량을 드러낸 배우 김아중의 말이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 출연 이후 여성영화에 대한 관심을 보여 온 그녀의 말처럼 영화계는 오랫동안 여배우가 전면에 나서는 작품에 대한 선호도가 낮았다.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 김윤석, 이병헌 등 흥행파워를 지닌 톱스타의 몫은 언제나 남자 배우의 몫이었다. 자연스레 출연료의 남녀격차도 존재한다. ‘칸의 여왕’ 전도연의 출연료는 여전히 송강호, 최민식 등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남자 배우를 주연으로 한 작품이 흥행한다기보다 여배우를 필두로 한 시나리오 제작 자체가 제한적이다. 상대적으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없는 현실이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최근 여배우를 중심으로 한 영화의 약진이 청신호를 밝히고 있다. 로맨스의 상대역이거나 미모를 앞세운 감초연기에 국한됐던 여배우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지난해 8월 개봉해 866만(이하 영진위 통합전산망 기준) 관객을 돌파한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은 첫 액션연기에 도전한 배우 손예진의 재발견으로 관심을 모았다. 손예진은 이 작품으로 흥행 타이틀과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865만명을 동원한 ‘수상한 그녀’ 역시 배우 심은경의 ‘원맨쇼’가 빛났고, ‘헬머니’는 김수미를 원톱으로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는 4월 개봉을 앞둔 영화 ‘차이나타운’은 김혜수의 새로운 연기 변신으로 주목받고 있다. 영화 ‘타짜’ 속 화투판의 꽃 정마담, ‘도둑들’의 섹시한 금고털이 도둑, ‘관상’의 매혹적인 기생을 비롯해 드라마 ‘직장의 신’ 비정규직 미스김까지, 어떠한 인물이든 자신만의 색깔을 덧입히며 재탄생 시켜온 배우 김혜수의 도전이기에 더욱 관심을 모은다. 2013년 영화 ‘집으로 가는 길’로 약 2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한 전도연은 여성영화의 저변을 확대한 가장 선구적 인물이다. 전도연은 그 동안의 공백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듯 작년 한 해 동안 ‘협녀, 칼의 기억’부터 ‘무뢰한’ ‘남과여’까지 세 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올해는 출연한 영화들이 연이어 개봉을 준비 중에 있다. 임수정은 ‘엽기적인 그녀’ 곽재용 감독의 신작 ‘시간이탈자’와 ‘시크릿’ 윤재구 감독의 ‘은밀한 유혹’으로 올 한해 변함없는 매력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상호 영화평론가는 “여배우를 필두로 한 작품의 제작과 흥행은 2억 관객 등으로 입증된 시장 확대를 토대로 한다. ‘한공주’ 천우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일부 상업영화에 치중됐던 제작환경의 틀이 허물어지는 시기”라고 말했다. 김아중은 최근 인터뷰에서 “여성영화가 우리나라에 깊게 뿌리내렸으면 한다. 이는 여배우로서 꼭 이루고 싶은 것이며 여배우란 직업에 애착을 더해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