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광해가 되어줘서 고맙다는 말, 하고 싶네요.”
연기자로 성장이 눈부신 그의 이름, 바로 서인국이다. 맞춤옷을 꺼내 입은 듯, 매번 작품마다 빼어난 캐릭터 소화력을 선보이는 그다. KBS 2TV 수목드라마 ‘왕의 얼굴’을 통해 그 역량을 또 한번 여실히 입증한 서인국(28)을 16일 인터뷰했다.
“이미 왕이 된 광해가 아니라, 왕자 때부터 왕이 되어가는 모습을 연기했지요. 이는 우리나라의 작품들이 그려낸 것 중 유일무이한 광해가 아닐까 싶어요.”
5일 막 내린 ‘왕의 얼굴’은 서자 출신으로 세자에 올라 16년간 폐위와 살해 위협에 시달렸던 광해가 관상을 무기 삼아 운명을 극복하는 과정을 담은 드라마다. 서인국은 주인공 광해를 맡아, 15세 왕자 시절부터 20대 중후반의 왕이 되기까지 인물을 그려냈다. 특히 그의 연기가 호평을 이끈 것은 성숙해가는 인물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표현한 까닭이다.
“외모적인 부분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우선 살을 이용했지요. 왕자 시절의 포동포동한 젖살을 내기 위해 통통하게 보이도록 했고요. 전란이 터진 이후 고생한 느낌을 내기 위해 다이어트를 했답니다. 시간이 흐르고 수염을 달게 되니, 그때부턴 마음 편하게 먹고 촬영했지요.”
캐릭터 안에 ‘서인국만 보이지 말자’는 게 모토라고 밝힌 그다. 꼼꼼하게 외모 디테일을 살린 서인국은 캐릭터 구사의 본바탕이 되는 대사 전달에도 신경 썼다.
“제가 나름대로 계산했던 건 말투와 목소리에요. 다른 사극을 보니까 일반 신분을 가진 역할들은 ‘뭐 했니?’라며 편하게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15세 왕자일 때는 비교적 현대적인 말투를 썼지요. 눈빛 또한 천진난만하게 표현하기도 했고요. 임진왜란 이후로는 위엄 있는 장수로서 사극 말투를 쓰고, 목소리 톤 자체도 굵게 냈어요. 전란이 끝나고 나서는 표정을 많이 짓지 않았습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놀라지 않고, 동요하고 싶지 않는,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영리한 배우 서인국은 첫 사극 도전에 합격점을 따냈다. 엠넷 ‘슈퍼스타 K1’의 우승자란 수식어가 따라붙지 않은 지는 오래다. 전작인 tvN 드라마 ‘고교처세왕’과 큰 반향을 일으켰던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등을 통해 로맨틱 코미디 연기에 강점을 내보이며 트렌디한 20대 남자 배우로 여성 시청자를 매료시킨 그였다. 이번 ‘왕의 얼굴’을 통해 보다 다양한 장르에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사극이라는 큰 문을 완벽하게 열진 못 했을지언정, 마무리 했다는 느낌이에요. 사극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없앴고요. 제가 앞으로 연기를 하는데 있어서 다양한 길을 선택할 수 있게 됐어요.”
‘’왕의 얼굴‘ 마지막회는 자체최고시청률인 9.1%로 뒷심을 발휘했다. 그만큼 엔딩에 대한 시청자의 호응이 높았다는 뜻이다. 서인국 역시 만족도를 표했다.
“뻔하지 않았던 게 좋았어요. 광해는 가희(조윤희)에게 여러 번 ‘나는 너를 더 이상 찾지 않을 것이다’고 얘기한 적 있지만, 그럼에도 어려운 상황에 놓인 가희를 도와줬고, 조언을 얻기 위해 만난 적도 있죠. 역사적 사실은 아니지만, 광해는 왕이 되고, 열린 결말로 마무리됐죠. 가희와 서로 다시 보지 않겠지만, 서로를 위해 희생할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요.”
방송 전부터 높은 호감도를 보여준 파트너 조윤희와 실제 호흡에 대해 그는 “누군가한테 좋게 기억됐다고 하는 게 저 스스로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조)윤희 누나가 잘 해줬기 때문에 제가 애교도 피울 수 있었다”고 치켜세웠다.
선조 역의 이성재와 친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워낙 MBC ‘아들 녀석들’ 때부터 저한테 영향을 많이 주셨다. 특히 상대방의 연기를 위해 배려하는 부분”이라며 “프롤로그에서 선조가 죽는 마지막 신이 있었다. 눈 뜨고 돌아가신 걸 보고 제가 막 우는 장면이다. (이)성재 형님은 화면에 나오지도 않는데, 눈물을 흘리셨다. 그 현장에 있던 스태프와 배우들이 극찬했다.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 남을 위해 감정을 소모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고 에피소드를 전했다.
배우들의 호연과 시너지에도 불구, 비교적 낮은 시청률 성적을 거둔 ‘왕의 얼굴’에 안팎으로 아쉬움도 남는다. 서인국은 “시청률만 바라보는 건 아니지만, 몹시 열심히 했기에 아쉬움도 없지 않다. 그래도 유종의 미를 거둬 웃으면서 끝냈고, 수도권 시청률은 10%가 됐다고 하더라. 너무 행복했다”고 털어놨다. 덧붙여 그는 “무엇보다 PD님과 작가님만 믿고 간 것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도움을 얻었다”고 말했다.
“(광해에게) 무척 고마워요. 그동안 떠나가는 캐릭터에 대한 할 말을 해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우리 드라마(‘왕의 얼굴’)의 광해를 만난 덕에 앞으로 작품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어요. 얻은 것만 생겼습니다. 잃은 것 없이 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