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윤리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전·현직 관료들의 한숨과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미 퇴직한 관료들은 외부의 눈치에 집에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가 하면 더 세진 관피아법이 오기 전에 막차를 타자는 인식이 확산되며 일찌감치 짐을 싸는 공무원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모 부처의 한 고위 공무원은 예정보다 빨리 짐을 쌀 계획을 세웠다.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취업제한 문턱이 더 높아질 게 뻔해 막차라도 타자는 마음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 공무원은 “법으로 재취업이 차단되기 전에 퇴직해 재취업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며 “아직 관피아법 시행 전이라 현직 시절 업무와 연관성이 없으면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취업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퇴직이 몇 달 안 남았거나 1년 넘게 남았더라도 차라리 관피아법 시행 전에 나가자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이다.
또 예전같으면 1급 실장이 내려가던 산하기관 자리에 최근 공모를 하면서 같은 부처 국장들과 경쟁을 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특히 1급 실장이 공모에 떨어지고 2급 국장이 그 자리를 꿰차는 상황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퇴직 공직자의 관련기관 재취업이 힘들어지면서 이미 퇴직을 한 고위 공무원들은 다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거나 재취업을 할 경우, 대부분 교수로 강단에 서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7월 퇴임한 현오석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립외교원 석좌교수로 위촉됐다. 조원동 경제수석 역시 중앙대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최문기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도 KIST 경영과학부 교수로 복귀했다. 이영찬 복지부 전 차관은 모교인 경희대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다. 복지부에서 기획조정실장을 맡았던 전만복 전 실장은 현재 관동대 부총장으로, 같은 부서 사회복지정책실장을 맡았던 박용현 전 실장은 을지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전문성을 띄던 관료들이 과거와는 달리 갈 길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부처의 인사적체 현상 역시 심화하는 양상이다. 특히 부처들 산하기관 고위직 자리에 교수나 정치인들이 자리하는 모양새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 등 인사시스템이 까다로워지면서 인사 적체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며 “청와대의 관피아 개혁 후속대책이 나오지 않고 산하기관장으로 가는 길이 실질적으로 차단돼 업무 차질은 물론 직원들의 사기도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 각 부처의 인사 동맥경화 현상으로 공직 내부의 불만이 심화해 국정운영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인사 공백 장기화는 자칫 업무의 차질이나 부실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관가 안팎의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