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인터페이스·경험(UI·UX) 전문기업 투비소프트는 국내 소프트웨어(SW) 업계에서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기업으로 꼽힌다. 국내 SW업체로선 드물게 지난해 미국 경쟁사인 ‘넥사웹 테크놀로지’를 인수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서다.
이는 경영진의 과감한 결단과 확고한 추진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뚫기 어려운 해외시장을 정공법으로 돌파해나가려는 김형곤 투비소프트 대표의 의지다. 투비소프트는 2000년 설립된 국내 1위 기업용 UI·UX 플랫폼 업체로, 지난해 중소기업청 ‘월드클래스300 프로젝트’ 기업으로 선정된 바 있다.
최근 서울 삼성동 투비소프트 본사에서 만난 김 대표는 미국 넥사웹 인수에 대해 “운이 좋았다”고 전제하면서도 “다른 SW업체들이 해외지사 형태로 보였던 성과들을 보니 이 같은 방식으로는 성공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차라리 인수합병 방식이 낫겠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차피 미국에 지사를 설립해도 200만 달러 정도는 투입될 텐데 차라리 이 비용으로 경쟁사인 미국업체를 인수하면 초기 정착 시간도 단축되지 않겠느냐”며 “또 해당 기업의 노하우와 매출 규모도 그대로 갖고 갈 수 있다는 장점이 눈에 들어왔다”고 덧붙였다.
말은 간단하지만, 사실 국내 SW업체가 거대시장인 미국 SW업체를 인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브랜드 파워가 떨어지는 만큼, 피인수 기업에서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어 과거에도 국내 기업의 실패 사례가 많았다. 김 대표는 “벤처캐피털(VC)이 미국 넥사웹의 최대 주주였고, 마침 매물로 나와 인수업체를 알아보고 있던 타이밍이어서 비교적 손쉽게 접촉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넥사웹을 인수한 이후 사명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 기업이 현지에서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 파워와 매출, 노하우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다만, 회사를 이끌어가는 경영진은 지난해 모두 교체했다.
김 대표는 “인수 후 8개월 이상 지나가더라도 기존 경영진의 마인드가 안 바뀌어서 결국 지난해 8월 해고했다”며 “대신 현지 직원들을 대상으로 능력 있으면 경영진으로 내부 승진을 시키겠다고 공표했더니 최근엔 분위기가 활기차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인수 후 통합과정을 통해 김 대표는 올해 미국시장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미국시장에서 투비소프트 제품을 통한 매출이 전무했다면, 올해는 매출 발생을 본격화시키겠다는 목표다.
김 대표는 “올해 미국 넥사웹에서 투비소프트 제품을 통해 적어도 100만 달러 매출을 기대하고 있고, 내년엔 300만~400만 달러를 예상하고 있다”며 “미국은 비즈니스 모델이 한국과 다른 라이선스 판매 모델이어서 초기 매출은 작지만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어 “이를 포함해 올해 연결기준으로 600만 달러 수출을 목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투비소프트의 수출 비중은 약 15% 수준이다. 한국 본사에선 내수시장만 공략하고, 나머지 미국, 일본 등 해외법인들이 수출을 담당하는 식이다.
투비소프트는 지난해 미국 넥사웹 인수 이후 일본의 니혼넥사웹과 투비소프트재팬의 합병도 마무리했다. 미국과 일본시장에서 차근차근 영역을 넓히고 있는 셈이다. 목표는 오는 2020년까지 UI·UX 플랫폼 모바일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점유율 20% 달성이다. 이를 위해 2019년까지 일본법인의 상장도 목표로 하고 있다.
김 대표는 미국과 일본시장 공략 이후 중국과 유럽시장도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지난해만 해도 진출하기에 시기상조라고 판단했지만, 최근 생각이 바뀌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예전엔 중국에 진출하는 데 무리가 있다고 봤지만, 현지 상황을 보니 시장이 급변하고 있더라”며 “지적재산권 보호 움직임도 있고, 국내 SW제품에 대한 인식도 좋아 현지 파트너를 발굴해서 영업을 시작해도 괜찮을 것으로 생각돼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네덜란드에 사무소가 있는 유럽에선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일 계획이다. 김 대표는 “네덜란드에 기존 고객이 있어 사업을 확장하려는 생각이 크다”며 “어떤 방향으로 키울지 고민 중이지만, 올해 안에 유럽에서 레퍼런스(사례)를 만들겠다는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 같이 투비소프트가 해외시장에 가속 페달을 밟을 수 있는 것은 핵심인 기술력이 강한 탓이다. 전 임직원이 272명인 투비소프트에서 연구개발(R&D) 인력은 72명으로 약 26%에 달한다. 여기에 송화준 최고기술책임자(CTO)를 통해 국내 특허 11건 등록은 물론, 일본에선 해외특허 4건도 등록돼 있다. 김 대표는 “기술력만 따져서는 세계 1위”라며 “SW는 매출 발생 이후 안정화 단계까지가 오랜시간이 걸려 앞으로 브랜드 파워를 쌓아나가는 것이 숙제”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올해 국내에서도 지난해 출시한 신제품 ‘넥사크로플랫폼’의 성공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올해 넥사크로플랫폼이 전체 매출의 30%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며 “익숙한 기존 제품을 사용하는 관행에도 불구하고 현재 기대치보다 잘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승승장구하는 투비소프트이지만 초창기 고비는 있었다. 대부분 창업 초기 3~4년차 ‘데스밸리’에 빠진 기업들에게 나타나는 자금조달 문제 때문이었다. 김 대표는 “2003년 창업 4년차 시절 자금조달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직원 구조조정을 생각했다”며 “하지만 직원들이 자진해 월급을 반으로 줄이고 사람을 지키자고 제안했다”고 회상했다.
결국 투비소프트 전 직원의 임금은 삭감됐다. 임금이 원상복귀된 것은 6년 후였다. 김 대표는 “그때 경험으로 내공이 생겨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쳤도 당시를 생각하며 버틴다”며 “당시 함께 고생했던 사람들이 이젠 대부분 그룹장, 본부장이 됐다”고 웃었다.
김 대표는 SW산업에 대한 정부 정책의 아쉬운 점도 언급했다. 그는 “너무 지원 측면으로만 정책이 쏠려있는데, 정작 중요한 건 시장 조성 문제”라며 “SW산업이 독립적으로 구성되지 못한데다, 제값 받기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1~2년의 지원이 아닌, 10~30년 정도의 산업 포트폴리오 전략을 구축하고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 발주사업부터 큰 사업으로 선택과 집중을 해 질적 지원으로 변환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