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 ‘쎄시봉’, ‘강남 1970’ 등이 관객과 만나고 있다. 1990년 개봉됐던 최진실 박중훈 주연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24년 만에 리메이크돼 상영됐다. 1997년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았던 한석규 전도연 주연의 ‘접속’ 등 1990년대 화제작들이 재상영 되고 있다. 과거를 소재로 하거나 배경으로 한 복고 바람이 스크린을 강타한다. TV 역시 마찬가지다. 김건모, 터보, 이본 등 1990년대 스타들이 출연한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1월 3일 방송분은 22%대의 높은 시청률로 1990년대 복고 열기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KBS ‘해피투게더’등 예능 프로그램에서부터 MBC ‘휴먼다큐-사람이 좋다’다큐, 교양 프로그램까지 1990년대 활동했던 가수나 연기자들을 경쟁적으로 출연시키고 있다.
한영애 서태지 소찬휘 김현정 등 활동이 뜸했던 1980~90년대 가수들이 복고 붐을 타고 활동을 속속 재개하고 있다. 1984년 산울림 10집에 수록된‘너의 의미’가 30년 만에 다시 김창완과 아이유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대중과 만나는 것을 비롯해 1960~1990년대 노래들이 가수들의 콜라보레이션과 리메이크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1980~1990년대 활동했던 故 김광석의 삶을 담은‘그날들’‘바람이 불어오는 곳’ 같은 뮤지컬이 공연계를 휩쓸고 있다. 음악과 공연 역시 1960~1990년대의 과거를 상품화하고 복고를 강력한 트렌드로 부상시키고 있다.
대중문화가 복고 열풍에 휩싸였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대중문화를 강타하고 있는 복고가 우리 사회의 퇴행을 가져오는 문제 있는 문화 현상이라는 점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복고는 힘든 현실을 정면으로 돌파하기보다는 과거에 안주해 현실을 등한시하는 부정적인 현상을 낳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정말 요즘 대중문화에서 강력한 트렌드로 떠오른 복고가 퇴행적이기만 할까.
‘88만 원 세대’ ‘삼포 세대’로 대변되는 어려운 현실, 즉 고용 없는 성장, 심화되는 양극화, 하우스푸어족 증가, 사회 안전망 부재, 실업자 급증 등 현실의 고달픈 삶이 과거를 소환시키는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현재가 어렵고 미래가 막막할 때 과거의 추억과 향수에서 위안을 찾으며 과거로 회귀한다. 대중문화에 거세게 일고 있는 복고 열기는 경기 침체로 인한 현실의 고단함, 물적 토대에 따른 인간의 서열화라는 현실의 결핍으로 인해 과거에서 위안 받고자 하는 욕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중문화에서의 복고는 바로 현실의 부족함을 메워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디지털 등 첨단 테크놀로지가 경제, 사회,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아날로그 분위기가 짙게 배어 있는 1960~90년대 복고 대중문화는 인간 본연의 날것 그리고 사람의 감성, 정(情) 등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켜준다. 1960~1990년대를 다룬 대중문화에선 디지털로 점철된 요즘 대중문화에서 느낄 수 없는 사람 냄새가 난다. 여기에 복고는 중장년층과 노년층에게 향수와 추억을 제공하며 문화 욕구를 충족시켜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복고는 대중문화의 소재와 지평을 확대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각 세대 간의 공통분모를 확대해 세대 간의 이해 접점을 확장하는 기능도 하고 있다. 대중문화 유행주기가 짧아지고 세대 간의 취향과 기호가 단절되는 상황에서 신세대가 향유하는 대중문화와 기성세대가 소비하는 대중문화는 건널 수 없는 강이 돼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복고 코드를 활용한 대중문화는 신세대와 기성세대와의 이해 접점을 확대하는 문화와 세대 통합의 의미도 담보한다.
인기가 있다고 해서 과거를 단순히 복제하는 대중문화의 복고 상품은 중년층에게도, 신세대에게도 외면을 받는다. 대중문화의 복고 상품이 의미 있는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하려면 과거의 현재화를 위한 치열한 재창조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단순히 박제된 과거의 현시(顯示)가 아닌 오늘의 의미를 획득한 과거를 보여줘야만 복고가 성공할 수 있다.
10대 아들과 50대 아버지가 입을 맞춰 김창완의 ‘너의 의미’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복고가 가져다준 가장 멋진 풍경 중 하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