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초는 꽃이 핀 주변의 눈이 녹는다는 의미로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 ‘눈색이꽃’ 혹은 ‘얼음새꽃’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깊게 쌓인 눈을 헤치고 올라온 복수초의 반짝이는 샛노란 꽃을 사진으로 종종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하얗게 쌓인 눈과 노란색 꽃이 자아내는 정경은 수많은 사진작가들의 작품 소재가 됐다.
복수초(福壽草)는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자생식물이다. 복수초는 이름 그대로 복(福)과 장수(壽)를 기원하는 식물로 알려져 있다.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나오는 강인함과 긴 개화기간으로 인해 무병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한자로는 설날에 꽃이 핀다 하여 원일초(元日草), 꽃이 금으로 만든 잔처럼 생겼다 하여 측금잔화(側金盞花)라 한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설날을 상징하는 식물로 새해 덕담과 함께 복수초를 주고받는 풍습이 있다. 행복을 기원하는 식물답게 복수초의 꽃말도 ‘영원한 행복’이다.
복수초는 서양에서도 사랑받는 식물 중의 하나이다. 영어로는 아도니스라고 하며 이는 복수초의 속명이다. 아도니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미소년이다. 아름다움의 상징인 아프로디테 여신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나, 사냥을 나가 멧돼지에게 물려 죽고 만다. 아도니스의 상처에서 흐른 붉은 피는 복수초 꽃이 됐다고 한다. 실제로 서양의 복수초는 붉은색으로 꽃이 핀다. 또 아도니스의 주검을 안은 아프로디테의 애달픈 눈물방울이 떨어진 자리에서는 하얀 아네모네가 피었다. 우리나라 자생지에서도 복수초 주변에는 아네모네속에 속하는 바람꽃 종류들이 늘 함께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구 반대편의 아주 오래된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식물의 생태에 관련된 내용이 우리나라의 자연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신기하다.
복수초는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부터 백두산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국에 자생하는 식물이다. 눈을 헤치고 처음 꽃망울을 터뜨릴 때에는 5㎝ 이내로 아주 낮게 자라지만 날씨가 점차 따뜻해지면서 높이 30㎝에 이르도록 지속적으로 자란다. 반짝이는 노란 꽃잎은 햇빛이 있는 한낮이나 맑은 날에는 꽃송이가 활짝 펴지지만 날씨가 궂거나 어두워지면 오므라진다. 궂은 날씨에는 수정에 필요한 곤충도 나다니지 않을 것이고 아직 추운 날씨에 귀중한 꽃술이 상할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복수초는 학술적으로 단순히 하나의 분류군으로 구분하고 있으나 전국적으로 다양한 형질을 지닌 무리들이 자생한다. 개화 시기를 비롯하여 꽃의 크기나 형태, 개체의 크기, 꽃과 잎의 생장 특성 등이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생물에 있어 종의 다양성도 중요하지만 고유한 형질을 나타내는 유전자의 다양성도 매우 중요하다. 유전자 다양성을 적절히 활용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품종을 육종하거나 개발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복수초와 같은 우리 자생식물들을 흔히 식물유전자원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지역적으로 각기 다른 모양과 생육 특성을 지닌 복수초가 자생한다. 지금 당장 경제적인 가치를 지닌 새로운 품종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장래 귀중한 자원개발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 자생하는 식물유전자원의 보전이 중요하다. 이미 꽤 오래전의 사건이지만, 우리 자생 복수초가 불법으로 채취돼 일본의 도쿄 인근 원예시장에서 대량으로 판매된 일이 있었다. 야생 상태의 자생식물을 헐값으로 외국에 수출하는 것보다는 균질하고 빼어난 형질의 품종으로 개발해 고가로 수출하는 것이 부가가치가 높다.
이제 곧 눈 녹은 산과 들에 많은 자생식물의 꽃이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그러나 함부로 채취하거나 자생지를 훼손하지 말자. 활용 가치가 높은 우리의 자생식물을 더욱 적극적으로 보전하고 귀중하게 여기자. 현재의 자생 식물은 지금의 우리가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 세대에서 잠시 맡아서 보관하고 있을 뿐 미래의 우리 후손들에게 영원히 물려줘야 할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