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표현에 꽤 관대한 기자도 성희롱과 유머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 때문에 난감할 때가 있다. 누가 들어도 낯 뜨거운 음담패설을 쏟아내면서 스스로 유쾌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이들이다. 후배라면 한 대 패기라도 할 텐데, 선배 등 예의를 갖춰야 할 상대인 경우 그 자리가 파할 때까지 가시방석이다. 물론 이들도 대놓고 성추행을 벌이는 자들에 비하면 애교로 넘길 수 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용서할 수 없는 건 힘을 지닌 자가 약자를 향해 벌이는 성적 발언이나 행동이다. 사회지도층의 ‘성희롱’ 또는 ‘성추문’ 사건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하루가 멀다 하고 도마위에 오른다. 그럴 때마다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부인하고 음모론을 내세우지만 하지 않은 짓으로 옭아맬 순 없다. 결국 굴욕적인 모습으로 공든 탑에서 내려와야 했다. 대표적 사례로 강용석 전 의원을 들 수 있다. 강씨는 “아나운서는 다 줄 생각을 해야 한다” 등 여성 아나운서를 비하하는 내용의 ‘성희롱 발언’으로 당적 제명 처분에 이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방송통신위원장을 지낸 이경재씨는 10여년 전 야당 의원들이 회의장을 점거하자 “남의 집 여자가 우리집 안방에 들어와 있으면 날 좀 주물러 달라고 앉아 있는 것”이라고 발언해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어디 이들뿐이랴. 다음달 첫 공판을 앞둔 박희태 전 국회의장을 비롯해 고위 검찰 인사, 모 시향 대표, 서울대 교수, 배우 이병헌 등 손에 꼽고도 남는다. 이는 젠더(gender)의 문제이자 인격의 문제다.
그런데 이들과 달리 한자를 몰라 ‘성희롱’에 휘말리는 경우도 있겠다 싶다. 며칠 전 손수조 새누리당 부산 사상 당협위원장의 결혼 소식을 접하면서 불현듯 스친 생각이다. 손씨의 예비신랑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많은 언론들이 “서울대학교 출신으로 IT회사에서 근무하는 재원이다”고 썼다. 기사대로라면 손씨는 동성과 결혼하는 것이다. 손씨 입장에선 정말 얼토당토않은 말이다. 왜냐하면 ‘재원(才媛)’은 한자 그대로 “뛰어난 능력이나 재주가 있는 젊은 여자”를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재주가 뛰어나고 괜찮은 남자에겐 절대 ‘재원’이라고 표현하면 안 된다. 그러면 어떻게 써야 바를까? 그것은 바로 ‘재자(才子)’다. 그런데 이 말은 널리 사용되지 않아 쓰기가 영 어색할 것이다. 이럴 경우엔 과감하게 한자말을 버리고 대신 순 우리말 ‘들보’나 ‘기둥’을 쓰자. 훨씬 부드럽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박근혜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 가운데 하나가 성폭력 근절이다. 그런데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사회 곳곳에서 성추문이 끊이지 않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결과가 뻔한데도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성희롱을 저지르는 이유가 참으로 궁금하다. 남들은 운이 나빠 걸린 것이고 자신은 문제 되지 않고 잘 넘어가리라는 생각이 바탕에 있는 듯하다.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인생 꼬이기 싫으면 자신의 기준에 따라 함부로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