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펠러 가문이 200여년간 최고 부자의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절약의 미덕을 항상 강조했기 때문이다.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엄청난 부를 쌓았음에도 불필요한 낭비를 절대로 하지 않았다.
향락과 사치의 소비 문화가 팽배한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당시에도 록펠러는 돈을 함부로 쓰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유행처럼 번지는 사치를 극도로 혐오했다.
외아들인 록펠러 2세에게 매주 많지 않은 용돈을 주고 용돈 기입장을 철저하게 쓰도록 했으며 향락에 빠지면 낭비벽이 생긴다고 생각해 열 살 아들에게 술과 담배를 멀리 하겠다는 서약서까지 받았다. 아이들 간 옷을 물려 입히는 것은 기본이고 자전거 한 대를 누나들과 나눠 타도록 하는 등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아끼는 습관을 익히도록 했다.
아버지의 절약 정신은 아들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록펠러 2세는 자녀들에게 “낭비라는 죄악을 절대로 저지르지 말라. 그것처럼 큰 죄악은 없다”고 늘 강조했다.
그의 철학은 밖에서도 이어졌다. 아이들과 함께 2개월간 미국 전역을 여행하던 도중 록펠러 2세는 관광버스 이용 요금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고 생각되자 곧바로 관계자에게 부당함을 따져 물었다. 적은 돈도 허투로 낭비하지 않겠다는 그의 철학이 확연히 드러나는 일화다.
록펠러 2세의 절약 정신은 그 다음 세대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그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절약 정신을 더욱 적극적으로 실천에 옮기기 위해 노력했다. 록펠러 2세의 큰 아들인 록펠러 3세의 일화가 유명하다.
그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뉴욕 록펠러재단 운영을 맡았다. 록펠러 3세는 전용기사가 있는 리무진을 마다하고 집에서 30분 거리인 록펠러재단으로 매일 걸어서 출근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경우는 비가 올 때였다. 그는 비가 오면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고 재단으로 출근했다.
해외출장 때도 거한 식사가 아닌 핫도그와 우유 한 잔의 가벼운 식사를 한 점도 몸에 밴 절약 정신 때문이다. 그는 이 같은 정신을 학문에 쏟아부어 훗날 아시아 분야 연구의 대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