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베를린으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베를린은 아름다운 도시였다. 특히 베를린 장벽을 비롯한 역사와 독일인이 가슴에 품고 있는 문화적 향기가 잘 나타난 도시이다. 독일의 옛 도심의 느낌이 잘 보존된 동독과 최신 건물이 번듯하게 우뚝 서있는 서독이 잘 조화를 이룬다. 또한 이곳의 벼룩시장이나 프리마켓은 검소한 독일인의 모습과 함께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름다운 그림에서부터 엔틱가구, 그리고 오디오 카메라 등등 지저분한 생필품 까지 모든 물건이 산처럼 쏘다져 나와 있어 그 나라만의 생활 문화를 만날 수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벼룩시장이나 프리마켓이 유행을 하고 있다. 휴일마다 서울 여기저기에서 쉴세 없이 열리고 있다. 그러나 골동품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치 보물찾기 하는 기분을 느끼기에는 무언가 2% 부족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서울에서도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최근 가수 지 드래곤의 뮤직 비디오 패러디에 등장하고, 최근 각종 TV프로그램에 등장하면서다. 주말에는 평균 10만명이 찾는다는 동묘 벼룩시장이다.
지난 1일 지하철 1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동묘앞역 동묘 벼룩시장을 찾았다. 영하10도의 날씨에도 지하철 역에서부터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활기차게 시장은 돌아가고 있었다. 동묘시장은 평일 250~300개, 주말 550~600개 정도의 좌판이 모여 있다고 한다. 하지만 체감은 그의 몇 배는 되는 듯하다. 골목 있는 곳, 앉을 수 있는 곳은 죄다 노점이 펼쳐져 있었다.
보물 142호 동묘(東廟) 주변 공터에 자리 잡은 노점 상인들은 무덤 높이 쌓아놓은 옷들 앞에서 의자에 올라 손뼉을 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골라 골라!" "이천원 이천원!" 워낙 손님이 많아 노점 주인들이 '사든지 말든지'라는 자세로 심드렁하게 대한다는 '사전 정보'와는 반대였다. 여기저기서 더 깎아보겠다고 흥정하는 소리가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동묘 벼륙시장은 ‘싼 가격’으로도 인기지만 멋쟁이들이 좋아하는 유명 브랜드 구제 시장으로도 이름났다. 손때가 많이 묻긴 했지만 루이비통·프라다 같은 명품 브랜드 제품도 가끔 눈에 띈다. 그래서 인지 곳곳에서 젊은 층의 고객들도 심심치 않게 물건을 고르고 있다. 또한 새벽 시간에는 인터넷 쇼핑몰 업자들이 물건을 ‘싹쓸이’ 해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1980년대부터 형성된 동묘 벼룩시장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는 정류장이다. 청계천 개발로 인근 황학동 벼룩시장 상인들이 동묘로 넘어오면서 구제 의류부터 외제 과자, 시계, 고서(古書), 레코드판 등 말 그대로 '없는 게 없는' 시장이 됐다. 낡고 떨어진 간판을 그대로 안은 거리 풍경에 골동품이 어우러져서인지 골목 자체에서 과거의 추억에 향기가 품어져 나온다. 그리고 동네가 주는 '빈티지' 느낌에 관광객들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추억에 향기를 담아 간다. 영하10도의 추운 날씨에 발품 좀 팔았더니 슬슬 배가 고프다. 골목 중간 중간 식당들도 동묘 벼룩시장 답게 허름하지만 가격은 매우 만족스럽다. 막걸리 2000원, 파전 1500~2000원에 파는 저렴한 가격이지만 담하내는 인심은 풍족하다. 주인장도 손님들도 기우리는 술잔과 함께 흘러나오는 웃음소리가 정겹다. 옷도 커피 한 잔 값이 안 되는데, 막걸리에 파전으로 배를 채워도 커피 한 잔 가격이 될까 말까하다. 왜들 ‘만원의 행복’을 외치는지 이제야 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