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안에서 아줌마들이 훌쩍인다. 극장 밖에선 아저씨들이 조용히 흐느낀다. 20대 젊은 남녀 관객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다. 노년의 관객들도 “어이구 어이구”하며 눈물을 훔친다. 관객들의 눈물 대열에는 남녀노소가 없다.
한 영화가 관객들의 눈물사태를 일으키고 있다. 신파조 영화냐고. 천만에. 요즘 1만 명 동원하기도 힘들다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제치고 기적 같은 100만 관객 돌파하며 거침없는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다.
KBS ‘인간극장’에 소개됐던 강원 횡성의 강계열(89) 할머니와 76년간 사랑하며 살다가 숨진 조병만 할아버지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왜 눈물 홍수사태를 야기한 것일까. 그리고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 것일까.
남편이 보험금 때문에 아내를 살해하고, 아내는 회사에서 명퇴당했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이혼을 강요하는 냉혹한 현실을 만나고 있다. 사랑은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한 외형적 조건의 만남 앞에 무기력해지고 외모, 재산, 학벌, 직업, 연봉 등 스펙으로 대변되는 조건들이 남녀 간의 만남에 우선시되는 것이 불편하지만 적나라한 우리의 현실이다. 스크린 밖 현실이 ‘님아…’관객의 눈물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남정욱 작가가 ‘결혼’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제 결혼 당사자들이 자신을 상품으로 내걸고 가격을 매기면서 서로 상대방의 상품과 품질 및 가격과 비교 흥정을 벌이며 재화나 지위를 목적으로 한 정략혼을 하는 것이 외면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살아가는 그리고 그런 현실에 적응해가는 사람들이 잊고 지냈던 사랑의 진정한 문양과 가치를 목격한 것이다. ‘님아…’에서.
“촬영하면서 느낀 점은 할머니에 대한 할아버지의 사랑과 할아버지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은 조건도 없고, 목적도 없는 사랑 그 자체였다”는 진모영 감독의 말은‘님아…’에 오롯이 살아있고 그것이 스크린 너머 관객의 마음에 진한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님아…’는 더 나아가 존재에 대한 가치보다 소유에 올인 하는 왜곡된 세태에 대해 성찰을 요구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빠르게 진행된 자본주의와 근대화를 바탕으로 진행된 압축 성장은 많은 문제를 낳았다. 그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존재를 아름답고 올바르게 만드는 의미나 인간을 튼실하고 값지게 만들어주는 휴머니즘, 사랑 등 소중한 가치가 팽배해가는 물신주의 앞에 실종된 것이다. 존재에 대한 고민보다 물적 소유에 대한 맹목적 추구와 광적인 집착은 결국 인간성 상실을 초래했고 범죄와 자살 급증, 불법과 비리 등으로 이어졌다.
‘님아…’는 물신주의로 인해 실종된 존재에 대한 고민과 함께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들의 진정한 의미를 목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님아…’는 무엇보다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드러내 우리의 삶을 다시 뒤돌아보게 한다. 죽음으로 인한 사람의 부재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자성하게 만든다. “사람은 보통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면서도 인생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란다”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아나톨 프랑스의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면서 죽음은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님아…’는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을 직면하게 만들고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에 대한 방향성에 대한 의미 있는 질문을 자신에게 하게 만든다.
‘님아…’를 보고 눈물 흘리면서 2014년 한해를 정리해보는 것은 어떨까. 극장 밖을 나와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한 번쯤 자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의미부여 해야 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런 질문들은 2015년 우리를 보다 가치 있는 성장을 가져다줄 것이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