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곤 위 처절한 승부는 허탈한 패배로 끝났다.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 되는 순간이었다. 지난 8월 로드FC 데뷔전 승리에 이어 2연승을 노리던 송가연의 스물 살 꿈은 그렇게 무참히 짓밟혔다.
누가 송가연의 꿈을 짓밟았을까. 송가연은 14일 밤 자신의 로드FC 데뷔 두 번째 경기에서 다카노 사토미(24ㆍ일본)에게 1라운드 4분 29초 만에 서브미션 패배를 당했다. 사토미에게 시종일관 주도권을 내준 경기였다. 경기 경험이 많지 않은 송가연으로서는 처음부터 벅찬 상대였던 건 분명하다.
하지만 벅찬 상대는 어디 사토미뿐이었을까. 경기를 앞둔 송가연의 각오는 남달랐다. “데뷔전에서 이기고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상처를 많이 받았다. 이번에는 좀 더 공격적으로 경기하겠다.” 두 토끼 사냥이었다. 데뷔 후 2연승으로 진정한 실력자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의 말엔 또 한 명의 적이 있음을 암시했다. 데뷔전 이후 혹평이 끊이지 않고 있는 여론을 의식한 말이다.
데뷔전 승리에도 불구하고 송가연을 향한 비난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자신보다 12살이나 많은 주부 선수를 데뷔전 상대로 택한 점과 애국심을 교묘히 이용한 ‘떡밥매치’라는 점이었다. 물론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니다. 그날의 데뷔전은 분명 아쉬움이 많았다. 하지만 국내 여성 격투기의 현실을 직시한다면 송가연에 대한 비난은 도가 지나친 듯하다.
송가연은 지난 8월 로드FC 데뷔 무대를 밟은 신인으로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세상을 향해 날갯짓을 준비하는 어린 선수다. 하지만 여성 격투기의 저변이 넓지 않은 만큼 대전 상대를 고르는 일조차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송가연의 대전 상대가 늘 입방아에 오르는 이유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무엇보다 송가연의 방송 출연에 대한 말이 많다. 송가연이 자신의 정체성으로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문제는 송가연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여성 격투기 선수들은 대부분 투잡을 하며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낮엔 일을 하다 밤이 되면 체육관에서 땀을 흘린다.
사정이 비슷한 여자 복싱을 예로 들면 이해가 쉽다. 여자 복싱 선수들은 챔피언이 되더라도 스폰서(대전료)가 없어 방어전을 치르지 못하는 실정이다. 무려 11개 기구 통합 챔피언이라는 전무후무 기록을 남긴 김주희(28)는 기업 후원 부족으로 프로데뷔 후 14년 동안 20회(18승 1무 1패 7KO승) 밖에 링에 오르지 못했다. 피땀 흘려 획득한 타이틀도 대부분 방어전조차 치르지 못하고 반납했다.
WBA 여자복싱 슈퍼 페더급 세계챔피언 최현미(24)도 타이틀 방어전 이야기만 나오면 말문이 막힌다. “챔피언이 되면 금방 부자가 되고, 행복해질 줄만 알았어요”라는 그의 말에서 한국 여자 복싱의 냉혹한 현실을 느낄 수 있다.
송가연 역시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프로야구나 축구처럼 소속 구단이 있어 연봉을 받으며 훈련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프로골퍼처럼 개인 스폰서도 없다. 송가연의 대전료라고 해봐야 경기당 50만원이 전부다.
송가연을 방송가로 몰아넣은 건 어쩌면 우리의 무관심일 수도 있다. 국내 여성 격투기는 기반이라는 말이 우수울 만큼 열악하기 짝이 없다. 사실상 송가연이 개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장된 도로도 이정표도 없는 유명무실 국내 여자 격투기 시장에 맨몸으로뛰어든 송가연에게 잘 못이 있다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택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