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에볼라 바이러스 공포의 본질을 추적하고, 우리 의료체계가 고 위험성 전염병에 대비해 국민의 안전을 지켜낼 수 있을지 알아본다.
SARS, 신종 플루에 이어 새로운 이름의 전염병이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치사율이 무려 90퍼센트에 달하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그 주인공이다. 세계보건기구 WHO는 20일 현재 1만5145명이 이 병에 감염되고 5420명이 사망했으며 당분간 사망자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 발표했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라이베리아에서는 최근 감염자가 줄어들었지만 의료진의 손길이 닿지 않는 농촌 지역에서 새로운 발병이 보고되고 있고 시에라리온, 기니에서는 여전히 감염과 사망이 늘고 있다. 최근에는 새롭게 말리에서 감염과 사망자가 발생했다. 희생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지 못하면 세계는 전염병의 공포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에볼라 발병 지역에 의료진과 구호인력을 파견하고 있으며 한국도 20여 명의 인력을 보낼 계획을 발표하고 그에 필요한 준비를 하고 있다.
문제는 현지에서 환자들을 돌보던 미국과 유럽 일부의 의사와 간호사, 선교사들이 감염된 것처럼 한국에서도 구호 및 의료 인력이 파견될 경우 에볼라에 감염된 환자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그러한 일을 겪고 있는 미국사회는 에볼라에 대한 두려움으로 요동쳤고 전염성 질병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정치적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다. 만에 하나 한국에 에볼라 환자가 생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지난 9월 21일, 부산에서 에볼라 감염이 의심되는 환자가 발생했다. 환자는 50대 권모씨였다. 약 5개월의 아프리카 체류 후 귀국한 그는 갑작스런 열과 의식불명으로 119 구급차량으로 이송되어 응급실을 찾았으나 1시간 40분 동안 병원을 찾아 헤맨 뒤에야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정부는 고 위험성 전염병에 대비하기 위해 17개 전문병원을 전국에 지정해 둔 상태였으나 부산에는 지정된 곳이 하나도 없었고 인근 진주와 울산의 대학병원들은 전문병원으로 지정된 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더 심각한 것은 소방본부 상황실의 환자 치료 요청에 대해 부산지역에서 해결하라고 응답했다.
결국 전문병원으로 지정되지도 않은 한 사립대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그는 하루 만에 사망했다. 의료진이 혈액을 채취해 질병관리본부로 보내고 사망 후 하루가 지나 확인한 그의 사인은 말라리아였다.
질병관리본부와 병원들의 미숙한 대응이 권씨가 치료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잃게 했다. 에볼라는 아니었지만 만에 하나 에볼라 바이러스 환자였다면 그가 치료 받은 병원의 의료진과 응급실이 오염되고 귀국 후 접촉한 가족들과 친지들도 모두 질병에 노출되었을지 모르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충격적인 치사율에 비해 전염성은 다른 종류의 전염병에 비해 그리 높지 않다. 공기 중으로는 전염되지 않는다는 것이 의학계의 정설이고 수백만 명이 감염됐던 신종 플루에 비하면 대규모로 발병한 지 10개월이 넘어가는 지금까지 감염자 수는 2만을 넘지 않고 있다. 보건 전문가들은 에볼라 바이러스가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변한 것에는 최근 발병한 세 나라 모두 오랜 내전으로 공공보건체계가 무너진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치료약이나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것도 상업적 가치가 없다는 거대제약회사들의 판단 때문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또한 공공의료시스템이 취약한 나라일수록 에볼라를 비롯한 고 위험성 전염병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다고 한다.
한국이 에볼라 확산을 막기 위한 세계의 노력에 동참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문제는 전염성 질환에 대한 대비는 고스란히 공공의료기관에 전가되고 있는데 상업화와 영리화로 치닫고 있는 한국의 의료체계에서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예산과 인력 지원은 갈수록 빈약해지고 있으며 그 와중에 공공병원들은 민간병원과 수익성경쟁을 강요받으며 적자를 이유로 폐쇄되기까지 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의료 환경에서 에볼라 외에도 앞으로 계속 생겨날 고 위험성 전염병에 대한 대비가 적절히 이뤄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