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달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한국식품 홍보행사를 개최하면서 찰스 랭글 의원을 만났다. 배, 김치, 김 등 한국 농식품을 좋아한다면서 특별히 한국산 배를 칭찬했다. 맛과 당도가 뛰어나다면서 특별히 자신의 손녀가 한국산 배를 좋아한다고 했다. 한국 농산물과 한국을 좋아하는 미국 정치원로의 함박웃음에서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푸근함을 느꼈다.
최근 노인과 나이에 대한 논쟁을 보면서 느낀 바가 많다. 필자는 1955년생으로 이른바 ‘베이비부머’ 첫 세대다. 한국전쟁 이후인 1955년부터 1963년에 걸쳐 태어난 베이비부머, 규모로는 약 712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거대 인구집단이다. 대부분 직장에서 퇴직했거나 서서히 퇴장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입시제도나 다양한 교육제도의 시험대에 올랐다. 급변하는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변화에 적응하느라 어려움도 많았다.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해 국가발전에 기여했고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했다. 60세면 분명히 적은 나이가 아니고 나이에 맞게 잘 처신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본격적 고령화시대이고 과거와는 다른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사회다. 은퇴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전문성과 경륜을 활용할 시기다. 이제 직장이나 사회에서 은퇴해 역사의 뒷골목으로 퇴장하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모습을 보면서 85세의 나이에 23선 도전에 성공한 찰스 랭글 의원을 떠올린다.
필자는 2011년 6월 파리에서 개최된 G20 농업장관회의에 농림부 차관으로 참석했다. 당시 “자본주의 체제의 지나친 일탈은 적절한 조정이 가해져야 한다. 규제 없는 시장은 시장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동갑내기인 사르코지 대통령의 연설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2년 전 사망한 IT업계의 세계적 거두 스티브 잡스, 변화와 혁신의 아이콘으로 세계 무역, 경제, 경영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그도 1955년생이다. 부인과 함께 자선재단을 설립하고 에이즈 퇴치, 식량 증산, 세계평화에 헌신하는 빌 게이츠도 1955년생이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있다. 경험과 경륜이 쌓이고 판단이 성숙해지는 60세 이후 각자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고 후손과 국가를 위해 봉사해야 할 나이다.
최근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됐다. 호주, 캐나다와의 FTA 비준안도 통과될 예정이다. 통상 이슈는 더욱 늘어나고 복잡해진다. 경험을 갖춘 원로가 슬기와 지혜를 갖추고 대처하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한미 FTA가 교착상태에 있을 때 한국을 방문한 찰스 랭글 의원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이해관계자의 설득과 조정, 타협”을 강조하는 정치원로의 충고가 기억에 남는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마늘 협상, 쌀 협상, 광우병 쇠고기 협상, FTA 협상 등 여러 협상 현장을 다니면서 터득한 값진 경험은 ‘타협’이다. 고집불통의 자세는 국제협상이나 국내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용, 복지, 성장, 분배, 외교, 통일, 통상 등 산적한 현안이 눈앞에 있다. 산업 간 갈등에다 계층 간, 지역 간 갈등이 겹쳐온다. 경륜 있는 원로가 앞장서서 갈등을 조정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