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지주사의 후계자 갈등 사태가 반복되고 있지만 금융당국에선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수뇌부 인사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4년 전 각 금융그룹에 ‘경영진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도입했지만 실효성 없는 대책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이 2011년 은행연합회와 함께 만든 ‘은행권 성과보상체계 모범규준’에는 은행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높이도록 실효성 있고 체계적인 경영진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도입·운영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시중은행들은 은행장과 임원 등 경영진의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비등기 임원의 선임과 해임 때 이사회 결의나 보고를 거쳐야 한다. 능력 있고 전문성 있는 임원 후보를 미리 육성해 신임 경영진 인선 때 인물난을 겪지 않도록 하고 은행장의 독선적인 임원 인사를 제어하자는 취지다.
또 경영진 임기를 최초 선임 때 2년 이상으로 하고 경영진 임명을 위한 평가기준과 절차, 해임·퇴임 사유 등도 명문화하도록 했다.
이를 두고 일부 금융권에서는 경영 자율성을 해치는 지나친 개입이라는 반발도 있었다. 이 모범규준은 국제 금융위기의 한 원인이 된 금융회사의 과도한 성과보상체계를 개편하라는 금융안정위원회(FSB)의 권고에 따라 만들어졌지만 FSB 권고안에는 장기 경영 성과와 연계한 성과급 지급 방식과 공시 등이 담겨 있을 뿐 경영진 후계자 양성이나 경영진 임명과 관련한 내용은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경영진 후계자 양성이 은행 내부에 국한되면 유능한 외부인사의 기용이 차단되고 현 최고경영자(CEO)의 입김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금감원이 모범규준을 빌려 은행 경영체제 개선을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은행의 책임 경영을 유도하고 경영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미래 경영진을 양성하는 것은 물론 비등기 임원 선임 절차를 강화할 필요가 있고, 이는 결국 성과보상 체계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모범규준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은행들을 대상으로 모범규준의 이행 현황을 점검해 경영실태 평가에 반영하도록 했으며 모범규준을 따르지 않는 은행은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그러나 최근 KB금융 사태는 금융당국의 이 같은 대책은 무용지물에 그쳤다는 것을 여실이 보여줬다. 인터넷 연수과정 같은 것들이 포함된 양성 프로그램은 아무 실효가 없었고 금감원의 사후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제대로 된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는 금융사를 찾아 보기 힘든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당장 KB금융만 해도 복수의 외부 컨설팅사를 통해 후보 리스트를 작성하며 내부 구성원들보다는 사외이사들의 입김이 선출 과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경영진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지도했지만 구체성이 떨어져 실질적으로 후계자를 양성하려는 의지가 없는 은행들이 많다”며 “KB금융 사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선 당국의 사후관리와 감독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