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뉴엘 대출사기의 전말]‘히든 챔피언’ 성공주의가 부른 ‘거짓 성공신화’

입력 2014-11-0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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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뉴엘의 성공과 몰락…생산공장없이 중국산 단순조립에 75세 모친 감사 등 모럴해저드도

▲지난달 초 홍콩 ‘모뉴엘 위장조립공장’ 정문이 닫혀 있다. 모뉴엘은 홍콩에 있는 위장 조립공장에 은행이나 회계사무소의 실사가 있을 때 현지인 30여 명을 긴급 고용해 조립라인과 공장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도록 연출하고, HT PC 4만여 대와 빈 상자를 창고에 쌓아 가동 중인 공장으로 위장했다. 사진제공 서울세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주가 주목했던 혁신기업 모뉴엘은 창업 10년이란 짧은 기간에 성공과 몰락을 한꺼번에 경험했다. 독특한 디자인과 혁신성으로 전 세계인들의 눈길을 끌며 주목을 받았지만 실제 영업수익으로 연결되지 못했고, 삼성전자 출신 ‘영업 달인’ 박홍석 대표 영입도 결론적으로 회사를 법정관리까지 겪게 만드는 패착이 됐다.

3일 모뉴엘에 따르면 2004년 원덕연 부사장이 설립한 이 회사는 세계 최초로 홈시어터 PC를 개발한데 이어 로봇청소기, 올인원 PC, 식물관리기 등 종합가전 제품들을 연구개발·판매하고 있다. 특히 제품 혁신성과 디자인, 내구성, 친환경성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좋은 반응을 이끌어왔다. 2007년 빌 게이츠가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에서 “엔터테인먼트용 PC를 만드는 모뉴엘 같은 회사를 주목하라”고 언급하면서 전 세계 가전시장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이후 모뉴엘의 성공가도는 계속됐다. 매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에서 혁신상을 꾸준히 6회나 받았고, 총 21개의 수상작도 배출했다. 올해 CES에서도 로봇청소기 2개, 청각 장애인 부모를 위한 베이비케어제품 ‘배블’ 1개, TV 도킹용 오디오 1개, 4S PC 1개 등 총 5개 제품이 수상했다. 지난해엔 삼성과 LG전자를 제외하고 최초로 최고 혁신상을 받아 일약 혁신 가전업체로 도약했다.

이 같은 해외의 주목에 모뉴엘은 2011년 수출 2억달러를 달성하는 등 국내에서 수출 우량기업으로 인정받았다. 매출액도 2012년 8251억원에서 지난해 1조2000억원대로 끌어올리면서, 일약 ‘1조 클럽’으로 등극했다. 창업 10년 만에 이룬 엄청난 성과에 정부와 업계에선 모뉴엘을 국가대표 히든챔피언 기업이라고 치켜세웠다. 금융권과 정책금융기관들의 대출·보증 등이 자연스럽게 몰려들었다.

하지만 모뉴엘의 성공은 ‘거짓 성공’이었다. 모뉴엘은 제조업체였지만, 제대로 된 생산공장도 없었다. 그나마 있는 국내 공장은 중국산 부품을 단순 조립하던 곳에 불과했다. 매출도 마찬가지다. 매출이 1조2000억원이었던 지난해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 유입은 15억원에 불과했다. 수출매출채권 규모를 부풀려 금융권과 정책금융기관들의 눈을 속였던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모뉴엘을 다녔던 직원들도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홍석 대표의 모럴해저드도 심각했다. 정작 회사는 매출을 일으키지 못하는 상황까지 처했지만 박 대표는 모뉴엘 자회사인 잘만테크에 자신의 동생을 대표이사로, 75세 모친을 감사로 임명했다. 등기임원 4명 중 3명이 직계가족이다.

최근엔 내홍도 발생하면서 붕괴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창업자인 원덕연 부사장이 회사 경영 문제로 박홍석 대표와 갈등을 빚으면서 퇴사했던 것. 모뉴엘을 다녔던 한 직원은 “그동안 디자인 개발에만 주력해오던 원덕연 창업자가 올해부터 경영에 관심을 보이자 박홍석 대표가 지난 조직개편에서 원 창업자를 내쳤다”면서 “그때부터 여러 직원들이 줄줄이 이탈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 같은 모뉴엘의 최근 몰락은 중소·중견 가전업체들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중견 가전업체 L사 대표는 “모뉴엘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선 혁신기업으로 대변되지 않았나”면서 “창업 10년 만에 이룬 성공이 거짓이었다는 점도 충격인데다, 모뉴엘처럼 과한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는 의식이 가전업계에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중소 가전업체 대표는 “무엇보다 앞으로 정부의 기술금융이 과거로 회귀할까봐 두렵다”면서 “모뉴엘과 같은 안 좋은 사례가 남아 앞으로 중소기업들에게 더 빡빡한 대출 기준을 들이댈 것 같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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