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부평 소재 인켈 본사에서 최근 만난 김상중 대표이사의 표정은 흥분으로 가득차 있었다. 최근 미국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마트와 스트리밍 스틱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까지도 김 대표는 이 계약건과 관련한 각종 회의에 불려 다니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인켈은 1978년 설립돼 80~90년대 국산 오디오 시장을 이끌어왔던 음향기기 전문기업이다. 국내는 인켈로, 해외에서는 셔우드라는 브랜드로 영업에 나서고 있다. 그동안 오디오 전문기업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만큼 스트리밍 스틱에 대한 계약건은 다소 생소했다.
김 대표는 “스마트폰 등의 보급으로 최근 오디오 시장은 매년 5%씩 축소돼 왔다”며 “이런 추세에 따라 인켈도 4년 전부터 사업다각화를 위해 통신, 산업용 디스플레이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대규모 계약을 맺은 스트리밍 스틱도 김 대표의 사업 다각화 일환이다. 주력시장이지만, 축소되고 있는 오디오 분야에 매달리기보다, 새로운 먹거리를 중점적으로 키우겠다는 의지가 컸다.
김 대표는 “오디오 시장이 재편되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위기의식을 갖기 시작했다”며 “사업 재편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대형마트 스트리밍 스틱 주문은 최근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귀띔했다. 이어 “정확한 물량 규모는 밝힐 수 없지만, 1개 기종으로 봤을 땐 최대 주문량이며 이는 인켈 역사상 최초”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 대표는 또 “직장 생활을 28년 동안 했지만 최대의 일 중 하나로 꼽을 것 같다”며 “그동안 바이어들에게 1억달러 규모의 계약제안도 받았지만 당시는 세트 등 다기종이어서 이번 건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스트리밍 스틱을 ‘뜨는 아이템’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김 대표도 지난 1년간 이번 계약건에 우선적으로 매달려왔다. 그는 “스트리밍 스틱은 인켈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며 “본격적인 생산은 내달 초가 될 것이고, 계약 소식이 발표되면 휴맥스 등 타 셋톱박스 경쟁사들에게도 긴장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오디오 시장이 축소되고 있더라도 인켈은 이 분야에서 꾸준히 매출을 키어온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에도 22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수출 비중도 매출 대비 85% 수준에 달해 중소기업청의 ‘월드클래스300 프로젝트’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오디오 분야의 ‘국가대표 중견기업’ 타이틀을 딴 셈이다.
김 대표는 “오디오 설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할 수 있는 전 세계 10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회사로 자부한다”며 “전 직원의 3분의 1이 설계인력(R&D 인력 90명)일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생산기지를 국내는 물론 중국, 베트남에도 구축해 소비자들이 원하는 곳에서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음향기기 분야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사업군을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 김 대표의 숙제다. 이에 김 대표는 인켈의 오디오 사업 비중을 점차 줄여나가고, 스트리밍 스틱, TV 등 새로운 사업군의 비중을 늘려나갈 방침이다.
그는 “현재 80%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오디오 사업을 3년 내에 40% 수준으로 줄여나갈 것”이라며 “대신 통신, 디스플레이, TV 등 새로운 사업군의 매출 비중을 60%로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디오 사업을 강화하고 싶어도 시장이 축소되니 별 수 없다”며 “사업군 가운데에서도 특히 통신 분야에 힘을 실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후발주자로 뛰어든 TV시장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삼성전자, LG전자와 맞대결을 펼치는 것이 아닌, 틈새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것이 김 대표의 전략이다. 김 대표는 총 3조원 규모인 국내 TV시장에서 향후 3~4년내 5%의 점유율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TV는 보는 것과 듣는 것으로 크게 구성돼 있는 데 인켈은 이 중 오디오 분야의 노하우를 갖고 있어 차별화된 음향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며 “삼성과 LG 등 글로벌 기업들이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서드 플레이어(third player‧3위 사업자)’로 자리 잡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이같은 사업 다각화 전략으로 3년 내 4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지난해 2200억원대 매출을 약 2배 이상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다. 10여년 전 4000억원대 규모였던 국내 오디오 시장이 최근 500억원대로 급감하면서 성장에 어려움이 많지만, 새로운 사업군으로 이를 극복하겠다는 셈법이다.
해외공략 목표도 ‘현실적’으로 잡았다. 저가 제품들을 대량 생산하는 중국업체들과의 가격 경쟁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인켈이 생산하는 제품들은 주로 중간 가격대여서 남미나 아프리카 지역 등에서 중국과 경쟁을 벌이기 힘들다”며 “대신, 디스플레이, 통신, 스트리밍 스틱 등을 많이 쓰는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시장을 노릴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프리미엄 전략은 추구하지 않겠다는 게 김 대표의 확고한 의지다. 시장이 크지 않은 만큼 보스와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와 맞대결하기엔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밑단에서는 중국, 윗단에서는 유럽 브랜드들이 자리하고 있는 가운데, 인켈은 철저히 중간 위치를 점하면서 실익을 꾀하겠다는 전략이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국내 기업 생태계에 대해서도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정부에서 무조건적으로 베풀기보다 각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혁신 노력을 해야한다”며 “정부는 과거처럼 앞에서 기업을 끄는 것이 아니라 측면에서 지원만 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중견기업들의 경우 R&D자금이 부족한 데 이에 대한 지원이 조금 더 보강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