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기업은 최근 B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면서 월 500만원씩 납입해야 하는 보험 가입을 요구 받았다. A기업 대표는 5년 납입, 10년 유지해야 손실이 나지 않기 때문에 대신 적금 가입을 해주고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B기업은 주거래은행 지점장이 바뀌는 게 두렵다. 지점장이나 대출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금리조정과 상품가입 권유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은행권의 여신시스템은 과거에 비해 선진화되고 있지만 대출 창구에서는 여전히 ‘꺾기(구속성 예금)’를 강요하는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대출이 거절될까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요구에 응해 주지만 꺾기 관행은 은행 창구의 일상화된 풍경이 됐다.
꺾기는 은행이 협상력 등이 낮은 중소기업이나 저신용자에 대출해 주면서 원하지 않는 금융상품 가입을 강요하는 불공정 행위다.
금융당국은 대출 고객의 의사와 관계없이 대출 실행일 전후 1개월 내 판매한 예적금, 보험, 펀드 등 월 단위 환산금액이 대출 금액의 1%를 초과하는 경우 꺾기로 간주해 규제하고 있다. 꺾기는 불완전 판매의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고객에게 돈을 빌려주는 우월적 지위를 통해 꺾기를 하다 보니 미흡한 상품 설명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금융당국의 규제에도 은행들의 꺾기가 줄지 않고 오히려 상품과 대상자가 확대된 신종 꺾기로 변질해 중소기업과 소비자들의 고통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수수료 수입이 많은 보험상품이나 펀드 판매에 주로 활용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한해 꺾기로 의심되는 사례가 총 5만4585건, 그 규모도 여신거래액의 절반(49.1%)에 해당하는 5조1110억원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별로 보면 국민은행은 152억원, 우리은행 43억원, 하나은행 23억원, 신한은행16억원에 달했다. 또 다른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구속성 예금도 이 기간 42억원에 달해 대부분 시중은행을 웃돌았다.
이에 금융당국은 하루가 멀다 하고 꺾기방지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 두 번에 걸쳐 대대적인 꺾기 방지책을 내놨다. 그러나 은행들의 수법이 금융당국 감시망을 교묘히 빠져나가고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과도한 꺾기 규제가 오히려 중소기업이나 저신용자들의 돈줄 막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관련 법령이 개정되면서 꺾기 규제가 강화됐다. 예컨대 은행이 A기업에 신규대출이나 만기연장을 해줄 때 그 시점을 기준으로 전후 한 달간 기업 대표와 등기임원들이 해당 은행의 수신 상품에 가입한 기록을 조회한다.
은행 조회 결과 A기업 임원들이 해당 은행에 예금이나 펀드에 가입한 사실이 확인되면 대출 연장이 막히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이를 꺾기로 간주하고 은행을 처벌하기 때문이다.
꺾기 관행 철폐가 금융 소비자 보호라는 선의에서 출발했지만 오히려 “대출받기가 더 힘들어졌다”는 푸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꺾기 관행을 없애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내부통제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