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상담소] “이젠 바다 안 무서워”

입력 2024-08-06 05:0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장·임상사회사업가

“봄아, 바다, 무서워?”(아빠) “(잠시 머뭇거리다가) 바다, 안 무서워.”(딸)

우리 가족은 매년 여름휴가가 시작되면 강릉을 방문한다. 강릉은 경치도 아름답고 음식도 맛있지만 역시 바닷물이 시원해서 좋다. 수영을 잘 못해도, 굳이 몸을 바다에 밀어 넣지 않아도, 발목까지만 바닷물에 담그면 영혼마저 서늘해진다.

내 딸은 생후 30개월을 갓 넘겼는데, 아빠를 닮아서인지 겁이 많고 신중하다. 특히, 청각이 예민해서 작년 여름에는 파도 소리만 듣고도 몹시 무서워했다. 당연히 바닷물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딸기 사탕을 준다고 살살 꼬셔도 소용없었다.

그런데 올해는 딸 표정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파도 소리를 듣고 여전히 ‘무섭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또래 친구들이 바닷가에서 신나게 노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거부 반응이 덜 격렬했다. 천천히 느낄 수만 있다면, 바닷물로 들어갈 듯했다.

가볍게 모래 놀이부터 시작했다. 바닷물을 조금 퍼 와서 모래를 적시니 아담하게 모래성을 쌓을 수 있었다. 딸은 모래가 잔뜩 묻은 손으로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다. 이제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싶어서 딸을 안고 바다 쪽으로 걸어갔다. 우리는 바닷물과 모래사장이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앉았다. 내가 먼저 다리를 뻗으며 보여주니 딸도 발목을 물 속에 집어 넣었다. 파도가 살랑살랑 다가왔다. 딸이 가볍게 웃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다를 직접 만났으니 신기했겠지.

나는 딸 손을 잡고 일어섰다. 딸은 몸을 약간 떨었지만 괜찮아 보였다. 바닷물이 무릎까지 차올랐을 때, 딸이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라 표정을 살펴 보니, 무서워서가 아니라 너무 신나서 소리를 지르는 듯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내가 딸에게 사용한 방법을 ‘체계적 탈감법’이라고 칭한다. 무엇을 두려워하면, 대상을 조금씩 경험하면서 서서히 부정 반응을 낮추어가는 방법. 결국, 본질은 ‘경험’이다. 사람은 모르는 대상을 무서워하니까. 직접 경험하면 덜 두려우니까. 옆에서 돕는 사람은 마음이 여유로워야 한다. ‘지금 안 되면 다음에’라고 넉넉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사람 표정을 계속 살펴야 한다. 그가 대상을 조금씩 접하면서 서서히 덜 무서워하는지 예민하게 감지해야 한다.

나와 딸은 바닷가에서 네 시간 넘도록 정신없이 놀았다. 나는 딸에게 ‘무섭냐?’고 계속 물었다. 하지만 딸은 다시는 ‘무섭다’고 답하지 않았다.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장·임상사회사업가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20년 째 공회전' 허울 뿐인 아시아 금융허브의 꿈 [외국 금융사 脫코리아]
  • 단독 "한 번 뗄 때마다 수 백만원 수령 가능" 가짜 용종 보험사기 기승
  • 8만 달러 터치한 비트코인, 연내 '10만 달러'도 넘보나 [Bit코인]
  • '11월 11일 빼빼로데이', 빼빼로 과자 선물 유래는?
  • 환자복도 없던 우즈베크에 ‘한국식 병원’ 우뚝…“사람 살리는 병원” [르포]
  • 100일 넘긴 배달앱 수수료 합의, 오늘이 최대 분수령
  • '누누티비'ㆍ'티비위키'ㆍ'오케이툰' 운영자 검거 성공
  • 수능 D-3 문답지 배부 시작...전국 85개 시험지구로
  • 오늘의 상승종목

  • 11.11 09:15 실시간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11,525,000
    • +4.74%
    • 이더리움
    • 4,417,000
    • +1.84%
    • 비트코인 캐시
    • 616,000
    • +10.99%
    • 리플
    • 816
    • +5.43%
    • 솔라나
    • 291,700
    • +5.27%
    • 에이다
    • 817
    • +18.75%
    • 이오스
    • 798
    • +17.7%
    • 트론
    • 228
    • +1.33%
    • 스텔라루멘
    • 150
    • +5.63%
    • 비트코인에스브이
    • 84,750
    • +12.4%
    • 체인링크
    • 19,820
    • +3.88%
    • 샌드박스
    • 402
    • +5.24%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