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매년 여름휴가가 시작되면 강릉을 방문한다. 강릉은 경치도 아름답고 음식도 맛있지만 역시 바닷물이 시원해서 좋다. 수영을 잘 못해도, 굳이 몸을 바다에 밀어 넣지 않아도, 발목까지만 바닷물에 담그면 영혼마저 서늘해진다.
내 딸은 생후 30개월을 갓 넘겼는데, 아빠를 닮아서인지 겁이 많고 신중하다. 특히, 청각이 예민해서 작년 여름에는 파도 소리만 듣고도 몹시 무서워했다. 당연히 바닷물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딸기 사탕을 준다고 살살 꼬셔도 소용없었다.
그런데 올해는 딸 표정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파도 소리를 듣고 여전히 ‘무섭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또래 친구들이 바닷가에서 신나게 노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거부 반응이 덜 격렬했다. 천천히 느낄 수만 있다면, 바닷물로 들어갈 듯했다.
가볍게 모래 놀이부터 시작했다. 바닷물을 조금 퍼 와서 모래를 적시니 아담하게 모래성을 쌓을 수 있었다. 딸은 모래가 잔뜩 묻은 손으로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다. 이제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싶어서 딸을 안고 바다 쪽으로 걸어갔다. 우리는 바닷물과 모래사장이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앉았다. 내가 먼저 다리를 뻗으며 보여주니 딸도 발목을 물 속에 집어 넣었다. 파도가 살랑살랑 다가왔다. 딸이 가볍게 웃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다를 직접 만났으니 신기했겠지.
나는 딸 손을 잡고 일어섰다. 딸은 몸을 약간 떨었지만 괜찮아 보였다. 바닷물이 무릎까지 차올랐을 때, 딸이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라 표정을 살펴 보니, 무서워서가 아니라 너무 신나서 소리를 지르는 듯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내가 딸에게 사용한 방법을 ‘체계적 탈감법’이라고 칭한다. 무엇을 두려워하면, 대상을 조금씩 경험하면서 서서히 부정 반응을 낮추어가는 방법. 결국, 본질은 ‘경험’이다. 사람은 모르는 대상을 무서워하니까. 직접 경험하면 덜 두려우니까. 옆에서 돕는 사람은 마음이 여유로워야 한다. ‘지금 안 되면 다음에’라고 넉넉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사람 표정을 계속 살펴야 한다. 그가 대상을 조금씩 접하면서 서서히 덜 무서워하는지 예민하게 감지해야 한다.
나와 딸은 바닷가에서 네 시간 넘도록 정신없이 놀았다. 나는 딸에게 ‘무섭냐?’고 계속 물었다. 하지만 딸은 다시는 ‘무섭다’고 답하지 않았다.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장·임상사회사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