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등 유럽선 시장 진입 빨라 상업화 가능, 해외로 눈 돌려
국내 디지털 치료기기 기업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2월 1호 디지털 치료기기 허가 후 4호까지 등장했지만, 허가 이후 상용화 제도 논의가 지지부진해서다. 기업들은 제도가 미흡한 국내보다 체계가 갖춰진 해외에 먼저 진출해 빠르게 시장에 진입하겠단 전략이다.
5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디지털 치료기기 기업이 글로벌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디지털 치료기기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의 일종으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가상현실(VR), 게임 등의 행태로 질병 치료와 건강 관리에 쓰인다. 국내에서는 에임메드, 웰트, 뉴냅스, 쉐어앤서비스 등이 허가를 받았다.
지난해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국내 2호 디지털 치료기기 슬립큐를 허가받은 웰트는 올해 7월 독일 법인 설립 후 유럽 시장 공략에 나섰다. 독일 주요 의과대학과 연구협약을 맺고 현지 임상을 준비 중이다.
앞서 올해 2월 웰트는 아시아 기업 최초로 독일 디지털헬스협회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또 4월에는 유럽 의료기기 규정(CE MDR) 인증도 획득했다. CE MDR은 유럽 시장으로 제품 수출을 위해 필수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국제 규정이다.
불면증 디지털 치료기기로 허가된 슬립큐는 불면증 인지행동치료법을 모바일 앱으로 구현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다. 실제 처방은 허가 후 1년이 올해 6월 세브란스병원에서 시작됐다. 아직 건강보험에 등재되지 않았고, 회사는 연내 임시등재를 추진 중이다.
2021년 창업한 이모코그는 2022년 독일에 지사를 설립하고 해외 임상과 글로벌시장에 도전한다. 회사는 치매 예방·진단·치료까지 전 주기에 걸친 디지털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주요 제품은 치매 위험군 선별을 위한 검사 도구 기억콕콕과 경도인지장애 환자 대상 인지치료 소프트웨어 코그테라다. 이 중 코그테라는 치매 전문의들의 공동 연구 성과를 디지털화한 제품이다.
이모코그는 2022년부터 코그테라의 글로벌 진출을 위해 독일 지사를 설립해 독일어, 영어 등 언어를 지원하는 글로벌 솔루션을 개발해 왔다. 현재 2025년 상용화를 목표로 국내에서 확증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올해 1월에는 독일 지사를 통해 CE MDR 인증을 획득했다. 회사는 향후 독일 디지털 치료기기 급여체계(DiGA) 진입을 위해 독일에서 임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국내 디지털 치료기기 회사들이 독일 등 유럽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려는 이유는 허가와 보험수가 제도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미 독일과 프랑스 등에서 관련 수가가 책정돼 있다.
특히 독일은 디지털 치료기기에 임시 수가를 책정하고 건강보험에 적용하는 등 이 분야에서 가장 선진적인 급여체계로 손꼽힌다. 독일에서만 60만 건의 디지털 치료기기가 처방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디지털 치료기기 업체가 해당 기기의 효과를 입증하는 자료와 임시 보험수가 계획서를 제출하고 심사를 통과하면 1년 동안 수가가 적용된다. 그 결과를 기반으로 효과가 입증되면 영구등재 심사를 받아 정식 수가 여부가 정해진다. 효과가 불충분하면 1년의 유효성 입증 기회를 더 준다.
반면 우리나라는 허가 후 첫 처방까지 1년 넘게 걸릴 정도로 제도가 미완성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처방 건수도 생각보다 저조하다. 국내 디지털 치료기기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는 가장 큰 이유다.
디지털 치료기기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에서 디지털 치료기기 허가나 수가 등 제도가 아직 미흡하다. 반면 독일 및 유럽은 전 세계에서 가장 제도가 체계적이다. 무엇보다 좋은 수가 제도가 있어 시장에 진입하기 편하고 빠른 상업화가 가능해 유럽에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