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사과도, 무더위도, 항공기 비상착륙도…모두 '이상기후' 영향이라고? [이슈크래커]

입력 2024-05-23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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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착륙한 싱가포르항공 여객기 기내의 모습. (출처=네이션 SNS 캡처/연합뉴스)
▲비상 착륙한 싱가포르항공 여객기 기내의 모습. (출처=네이션 SNS 캡처/연합뉴스)

"나와 아내는 천장에 머리를 부딪쳤고, 다른 승객들은 공중제비를 돌았습니다."

21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에 비상착륙한 런던발 싱가포르항공 SQ321편 여객기에 타고 있던 영국인 제리 씨가 전한 비행 기억입니다.

그는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여행 중이었다고 BBC에 밝혔는데요. "비행기가 급락하기 전 경고가 없었다"며 "가족 중 누구도 죽지 않은 게 운이 좋았다"고 말했죠.

방콕포스트 등 현지 매체와 외신에 따르면 이날 극심한 '난기류'가 여객기를 뒤흔들었습니다. 항공기는 3분이 조금 넘는 시간 6000피트(1800m)나 급강하했는데요. 승객들은 튀어 오르면서 선실 천정에 머리를 부딪쳤고 물건들도 마구 쏟아졌습니다. 항공편은 11시간 넘게 고도 3만7000피트로 평온하게 비행하고 있었기에 많은 이들이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있었던 겁니다.

이 사고로 73세 영국인 승객 한 명이 사망하고 71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인은 심장마비로 추정되는데요. 말레이시아, 영국, 뉴질랜드, 스페인, 미국, 아일랜드 국적 승객 총 7명은 중상을 입었죠.

CNN은 위성자료 분석 결과 미얀마 상공에서 뇌우가 빠른 속도로 발달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 때문에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난기류는 수많은 항공기가 경험하는 요소입니다. 심각한 난기류는 항공기 안전까지 위협하곤 하는데요. 최근 기후 전문가들 사이에서 심화하는 '기후 위기'가 이런 난기류의 발생 빈도까지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항공기가 뜨고 있다. 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자료용 사진. (뉴시스)
▲지난해 11월 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항공기가 뜨고 있다. 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자료용 사진. (뉴시스)

예고 없이 항공기 휩쓰는 청천 난기류…"3배까지 증가할 수도"

난기류는 공기 흐름이 예측할 수 없이 불규칙한 난류의 형태를 띠는 걸 말합니다. 소용돌이치는 기류가 비행기 날개에 부딪히면서 기체가 흔들리게 되는데요. 대표적인 난기류로는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먼저 발달한 구름 옆을 지날 때 종종 볼 수 있는 뇌우 난기류가 있습니다. 가열된 공기가 상승하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태양에너지가 강한 여름철 적도 부근에서 주로 나타납니다. 특정 모양의 구름이나 뇌우가 발생하는 곳에서 생기기 때문에 예측과 대처가 가능하죠.

다른 비행기에 의해 발생하는 항적 난기류도 있습니다. 앞서가는 비행기의 남은 기류와 움직임으로 발생하는 인위적인 난기류라고 할 수 있는데, 비행기가 느리거나 클수록 더 심합니다. 2001년 11월 12일 미국에서 발생해 265명이 사망한 항공기 추락 사고의 1차 원인이 항적 난기류기도 하죠.

맑은 하늘에 생기는 청천 난기류도 매우 위협적입니다. 폭풍이나 구름 같은 전조 증상이 없는 이 난기류는 공기가 빠르고 좁게 흐르는 ‘제트기류’ 주변에서 많이 생기는데, 수분이 없어 눈에 보이지 않고 비행기 기상레이더에도 잡히지 않습니다. 베테랑 조종사들도 긴장하게 하는 존재죠. 1966년 3월 일본 나리타 공항을 출발한 보잉 707항공기가 후지산 상공에서 추락한 사건으로 승객 전원이 사망했는데, 사고 원인은 설계 하중을 초과하는 청천 난기류였습니다. 이 사고 이후 맑은 날씨에도 강력한 난기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항공계에 알려졌고, 난기류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습니다.

난기류 강도는 4단계로 구분합니다. 승객들에게 좌석 벨트 착용을 안내하는 정도의 라이트(light), 기내식 서비스가 중지되는 머더레이트(moderate), 일시적 제어 불능 상태가 될 수 있는 시비어 (severe), 심하게 흔들려 통제할 수 없고 기체 손상이 우려되는 익스트림(extreme) 단계 등인데요. 흔히 만나는 난기류는 심해야 머더레이트 수준인 데다가 만날 가능성이 작습니다. 설령 만나더라도 회복할 수 있는 여유 고도가 충분하며 익스트림 난기류에도 견딜 수 있도록 항공기가 제작된 덕분에 과도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CNN에 따르면 매년 미국에서만 약 6만5000대의 항공기가 난기류를 경험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5500대는 심한 난기류를 맞닥뜨리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상 기후가 이런 난기류 발생 빈도와 위력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이 이어진다는 겁니다. 기온이 상승하면서, 난기류가 발생하기 더 좋은 환경으로 바뀌는 거죠.

영국 레딩대학교 대기학과의 폴 윌리엄스 교수는 2013년부터 관련 분야 연구를 진행해왔습니다. 윌리엄스 교수는 2022년 CNN에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심각한 난기류가 향후 수십 년간 2배, 혹은 3배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윌리엄스 교수는 2050∼2080년에 특히 청천 난기류가 눈에 띄게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8년 사이 난기류로 발생한 사고의 약 28%에서 승무원들이 어떤 경고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윌리엄스 교수는 "보통 대서양을 비행할 때는 10분 정도 난기류를 만날 수 있지만, 수십 년 안에 20분, 30분으로 늘어날 수 있다"며 난기류의 평균 지속 시간도 길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펄펄 끓는 가마솥 날씨에 사상 처음으로 폭염 대응 중대본 2단계가 가동된 지난해 8월 4일 서울 시내 한 건물 외벽에 설치된 실외기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rean@)
▲펄펄 끓는 가마솥 날씨에 사상 처음으로 폭염 대응 중대본 2단계가 가동된 지난해 8월 4일 서울 시내 한 건물 외벽에 설치된 실외기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rean@)

오락가락 벚꽃에 폭염 예고, 물가 위협도…기후 위기 진통 어디까지

지난해에는 벚꽃이 예년보다 이르게 개화하면서 수많은 지자체가 ‘벚꽃 없는 벚꽃축제’를 치렀는데요. 점차 빨라지는 개화 추세에, 올해는 곳곳에서 꽃축제 날짜를 앞당겼습니다. 그러나 국내 최대 벚꽃축제인 진해 군항제 벚꽃이 폐막을 불과 이틀 앞두고 만개하는 등 벚꽃은 예상보다 늦게 피어나 당혹감을 자아냈고, 올해에도 곳곳에서 '꽃 없는 꽃축제'가 벌어졌죠.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에 개화일 예측에 실패한 겁니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YTN을 통해 “벚꽃은 특히 장기적인 날씨가 아니라 단기적으로, (꽃이) 필 때 기온이나 일조량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올해는 평년보다 일조량과 기온이 낮다 보니 개화가 늦어지는 것”이라며 “기후변화로 결국 벚꽃이 피는 시기는 빨라질 것이다. 문제는 ‘그때그때 그해 3월의 기온이 어떻게 되느냐’다. 전반적으로 기온은 상승하는 가운데 기후변화의 진통은 커진다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죠.

벚꽃이 피기도 전에 올여름 무더위에 대한 예고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는 기후변화로 열파(폭염·heat wave)가 더 느리게 이동해 더 오래 지속한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는데요. 이 연구에 따르면 1979년 이래 전 세계적으로 열파는 20% 더 느리게 이동하고, 67% 더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는 더 많은 사람이 더위에 더 오래 노출된다는 의미입니다. 폭염 기간 최고 기온은 40년 전보다 더 높고, ‘열돔’(heat dome) 현상이 나타나는 지역도 더 넓은 것으로 나타났죠.

연구 공동 저자인 미국 유타주립대학교 기후학자 웨이장은 “열파가 더 느리게 이동한다는 건 폭염이 해당 지역에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다는 뜻”이라면서 “(이것이) 우리 인간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엄청날 것이며 수년에 걸쳐 더 커질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기상청도 올여름은 평년보다 덥고, 비가 많이 내릴 확률이 높다는 전망을 내놨습니다.

이상 기후로 인한 극단적인 날씨, 자연재해는 작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물가까지 끌어올립니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맥시코 일대에서 심각한 가뭄이 이어지면서 할라페뇨 고추 생산이 줄어들었습니다. 스리라차 소스 가격은 폭등했고 품귀 현상을 빚었습니다. 서아프리카 가뭄으로는 코코아 생산량이 줄어들어 초콜릿 원료 가격도 뛰었죠.

국내에선 지난달 양배추 8㎏당 도매가격은 1만7240원(상품 기준)으로 평년(2019~2023년) 6627원에 비해 무려 160% 가격이 상승했습니다. 오이맛 고추(72%)와 대추방울토마토(67%), 배추(상품 기준 62%), 참외(58%) 등 다수 품목이 올랐는데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는 5월 관측보에서 농산물 도매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주산지 기상 악화 등을 이유로 꼽았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기상 여건 변화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기후 변화 등으로 발생 빈도가 높아진 기상 악화를 최근 농산물 가격 급등의 원인으로 지목했죠. 금사과, 금배, 금수박까지 각종 농산물 앞에 '금'이 붙은 실정입니다. 기후 위기로 인해 인간이 감당해야 하는 비용이 실제로 늘어나는 모습이죠.

지난달 과학저널 네이처에는 기상 이변이 식품 물가뿐 아니라 전체 인플레이션 수치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습니다. 1996년부터 2021년까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121개 국가의 월별 가격 지수 관측치 2만7000개와 고해상도 기상 관측치를 통합 분석한 결과, 기후 이변으로 인해 식품 인플레이션이 향후 10년 동안 연간 3% 포인트씩 증가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온 건데요. 전체 인플레이션도 연간 0.3% 포인트에서 약 1.2% 포인트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전반적으로 가장 큰 인플레이션 증가는 따뜻한 지역, 저위도에 위치한 국가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죠.

▲아기 기후소송 대표인 한제아 어린이가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제42조 제1항 제1호 등의 위헌 확인 사건 2차 변론기일에 참석해 발언을 준비하고 있다. (뉴시스)
▲아기 기후소송 대표인 한제아 어린이가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제42조 제1항 제1호 등의 위헌 확인 사건 2차 변론기일에 참석해 발언을 준비하고 있다. (뉴시스)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 결론은?…적극적인 '기후 전략' 필요한 시점

이렇다 보니 각국에서는 기후 위기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4년 전 '기후 소송'이 제기됐습니다. 정부가 기후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건데요. 이후 지난해까지 비슷한 헌법소원 3건이 잇따라 제기되자, 헌법재판소는 이를 병합해 심리 중입니다.

소송의 쟁점은 현행법과 시행령이 기후 위기 대응에 충분했는지 여부입니다. 정부는 탄소중립 기본법과 시행령, 국가 기본 계획 등에서 2030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배출량 기준의 40%만큼 감축하고, 2050년에는 순배출량을 0으로 맞춘다는 계획인데요. 청구인 측은 이러한 대응이 국제법이 요구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며, 미래 세대에 과도한 부담을 전가하는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정부 측은 온실가스 배출량 40% 감축은 기존 감축 목표를 대폭 상향한 것이며, 제조업 중심의 경제 구조와 주요 선진국보다 온실가스 배출량 정점이 늦은 점 등을 고려하면 경제계와 산업계에서 부담을 느낄 만큼 온실가스 감축 폭이 크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현실을 반영한 목표 설정이며, 이 같은 입장이 기본권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죠.

앞선 해외의 기후 소송에선 정부의 대응책임이 인정되기도 했는데요. 2019년 네덜란드 대법원은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위법하다고 결정했고, 2021년 독일 헌재는 연방기후보호법이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헌재 결론은 9월 이전에 나올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기후 위기가 인류의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는 만큼, 이 결론과는 별개로 보다 적극적인 '기후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엔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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