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 통한 합리적 해결…불필요한 사회적 비용 줄여
수개월 뒤 시작된 형사재판에서 B 씨는 유죄를 선고받았고, A 씨는 피해회복을 위해 민사소송을 추가로 제기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만 수 년, 변호사 비용에만 수백만 원이 들어갔다.
이처럼 고소인이 피고소인으로부터 범죄로 인한 치료비나 금전적 보상을 받고 싶어도 실질적으로 피해를 변제받는 과정은 복잡하고, 시간과 비용도 상당하다.
그러나 ‘형사조정 제도’를 이용하면 신속하게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다. 수사와 처벌에 집중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조정을 끌어내는 ‘피해회복적 형사사법’이다.
12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전국 검찰청의 형사조정 사건의 성립률은 매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형사조정 의뢰 건수 6만9528건 가운데 5만9243건이 처리되고, 이 중 3만6935건이 성립됐다. 형사조정 성립률은 62.3%를 기록, 10년 전(51.9%)보다 10.4%포인트(p) 높았다. 코로나 국면 때 잠시 주춤하던 걸 제외하면 10년간 대체로 늘어나는 추세다.
검찰의 형사조정제도는 2007년 8월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2010년에는 ‘범죄피해자보호법’이라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지금은 매년 6만~7만여 건이 조정 사건으로 올라온다. 10건 중 6건의 꼴로 사건이 성립돼 검찰 내에서도 운영 성과가 크다고 평가받는다.
검찰에 접수‧송치된 사건이 재판으로 넘어가고 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기까지 상당한 사법 비용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형사조정 제도를 이용하면 분쟁을 조정하는 과정을 통해 사건을 조기에 종결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피해자의 피해도 회복해주고 가해자를 전과자로 만들지 않아도 되는,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줄여주는 셈이다.
이 같은 사회적 비용 감소 효과는 연구로도 입증됐다. 대검찰청의 ‘형사조정의 실효성 연구’(2015년)를 보면 2014년 형사조정에 투입된 예산은 33억 원인데, 합의를 통해 피해자가 받은 금액은 총 1100억 원으로 추산된다.
또 형사조정이 성립돼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릴 경우 20~35일 만에 사건이 종결되지만, 조정이 불성립으로 기소돼 재판에 넘어간다면 선고까지 197~208일이 소요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사건 당사자들뿐 아니라 사법기관의 비용 절감 효과가 뚜렷한 것이다.
법학 박사인 천주현 변호사(천주현 법률사무소)는 “회복적 사법 제도는 이미 재판 과정에서 공탁이나 합의로 많이 강구되고 있고, 법원에서도 이를 중요 양형 사유로 삼고 있다”며 “재판에 가기 전 수사단계에서 미리 피해자가 상대방으로부터 피해 회복과 사과를 받으며 사법 절차가 종결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형사조정에 회부되는 사건은 범죄피해자보호법 시행령으로 정하고 있다. △금전거래로 인해 발생한 분쟁으로 사기, 횡령, 배임 등 재산범죄 사건 △개인 간의 명예훼손‧모욕, 지식재산권 침해, 임금체불 등 사적 분쟁 △이 외에 형사조정에서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고소사건 등이다.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가 주로 그 대상이 된다. 폭행이나 명예훼손 등 사건은 양측이 합의하고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하면 더 이상 수사기관은 수사를 진행하지 않는다. 사건을 조기에 종결하게 된다.
‘무혐의 성격이 짙은’ 사건도 조정 대상이다. 고소인의 주장에 비해 증거가 부족하거나 피고소인의 변소가 합리적이고 수긍할 점이 있는 경우다. 수사기관에서 계속 수사를 이어가는 데에 부담이 따르고, 무혐의 처분을 내리자니 고소인이 억울해한다면 형사조정으로 회부할 수 있다.
차경자 대검찰청 인권담당관실 연구관은 지난달 개최한 ‘2024년도 춘계 학술대회‧인권 전문검사 커뮤니티 세미나’에서 “반드시 형사처벌이 우선돼야 하는 사건이 아니라면 이러한 다수 이해관계가 얽히고 감정이 얽혀서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도 조정을 통해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