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빼놓고 부인과 딸에 부동산 증여
직접 설립한 장학재단에 全 재산 유증
병든 부모 외면…사망하자 ‘얌체 상속’
유류분제도 자체 아닌 형제자매간 위헌
법정상속분을 정한 ‘유류분’ 제도가 47년 만에 손질이 불가피해졌다. 헌법재판소는 25일 유류분에 관한 위헌제청 및 헌법소원 사건에서 “일부 위헌 및 헌법불합치”를 결정했다.
유류분은 상속인인 배우자와 자녀‧부모‧형제자매에게 ‘법정상속분의 2분의 1~3분의 1’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1977년 생긴 유류분 제도는 유산이 아들, 특히 장남 위주로 분배되는 것을 막고 부인과 딸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여성 권리 향상을 위한 제도였던 셈이다.
하지만 여권(女權) 신장으로 여성이 상속에서 소외되는 일이 많이 사라진데다 산업화와 1~2명 자식으로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당초 법 취지와 어긋난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실제 피상속인이 배우자와 딸에게 재산을 증여하자, 그 아들이 유류분 반환을 청구한 사건에서 법원이 직권으로 위헌제청을 하는 등 총 14건의 위헌제청 사건이 헌재에 계류 중이다. 또한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자신의 전(全) 재산을 장학재단에 유증한 뒤 사망한 망인의 자녀들이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을 낸 사건에서 장학재단이 청구한 헌법소원 사건을 포함해 총 33건의 헌법소원 사건이 헌재에 계류 중이다.
조웅규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는 “피상속인의 유언의 자유 및 재산 처분의 자유, 수증자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점에서 위헌적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지만, 유류분 제도 자체를 위헌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진단했다.
조 변호사는 “형제자매에게 유류분을 인정하는 일은 과거 유류분이 도입됐던 당시와 법 현실 사이 괴리가 크기 때문에 해당 조항에 한해서는 위헌이라고 판단했다”면서 “다른 유류분권자들 중에도 일반 국민의 법 감정과 상식에 반하는 경우까지 유류분을 인정하는 것은 부당하므로 유류분 상실 사유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입법을 통해 개선하도록 명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유류분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사회적 요구가 커진 대표적인 사례가 2019년 발생한 ‘고(故) 구하라 씨 사건’이다. 구 씨가 숨지자 20여 년 전 가출했던 친모가 갑자기 나타나 상속분을 달라며 소송을 걸었다. 자식을 버리고 코빼기도 내밀지 않았던 친모가 염치없게 재산을 요구한다며 공분이 일었지만 법적으론 어쩔 수 없었다.
소송 끝에 구 씨가 남긴 재산의 40%는 친모의 몫이 됐다. 유류분을 요청할 수 있는 상속인을 제한하는 이른바 ‘구하라법’은 제20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됐고, 21대 국회에선 아직 계류 중이다.
이날 헌재가 유류분 상실 사유를 규정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헌법불합치’ 결정한 민법 제1112조 제1호부터 제3호는 법률상 가족이지만 실제 가족으로 유대가 전혀 없었던 사람이나 유류분을 배려해줄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까지 유류분을 보장할 이유가 없으므로 유류분 권리자라도 일정한 경우에는 유류분을 행사할 수 없다는 내용의 입법 개선을 요청한 것으로 해석된다.
게다가 종래 기여분을 정한 민법 제1008조의 2를 유류분에 준용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상속에서의 기여분 제도와 유류분 제도는 서로 관계가 없는 단절된 상태였다. 그 결과 기여상속인이 비기여상속인의 유류분 반환 청구에 대해 기여분을 근거로 방어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어왔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기여분도 유류분 반환 청구에서 고려될 수 있도록 해 양 제도 간 모순되지 않는 판결이 가능해졌다.
헌법소원 사건을 변론한 변호인단 중 법무법인(유한) 동인의 이동국‧이해림 변호사는 “이번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은 1977년 신설된 이래 현재까지 47년째 아무런 개정 없이 유지되고 있었던 유류분 제도의 불합리한 면을 사회적 변화 및 국민의 법 감정에 반하지 않도록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병든 부모를 외면한 자녀나 자녀를 버리고 떠난 부모 등이 피상속인 사망 후 유류분을 청구하는 ‘얌체 상속’은 이 사건 소송뿐 아니라 꾸준히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돼온 바 있고 따라서 유류분 제도의 목적 정당성이 상실됐다”고 주장했다.
유류분 비율을 낮추거나, 일률적 비율이 아닌 적정한 범위를 정하는 방법 등으로 재산권을 덜 제한할 수 있는 다른 합리적인 대안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반한다는 입장이다.
법조계에선 해외 입법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미국은 23세 이하의 직계비속인 상속인 또는 정신적‧신체적 장애로 인해 스스로를 돌볼 수 없거나 자신의 재산을 관리할 수 없는 상속인에 대해서만 유류분을 인정하는 주(州)가 존재한다. 영국의 경우에는 부양의 필요성, 피상속인과 청구인 간 부양책임의 정도 등을 고려해 법원이 액수와 방법을 구체적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은 상속인에게 책임 있는 행위로 인해 피상속인과 상속인 간 관계가 훼손된 때에는 피상속인에게 유류분을 상실시킬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