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1000원 빵’, 안심하고 먹어도 되나요? [이슈크래커]

입력 2024-04-1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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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서울 지하철 논현역 상가에서 빵을 판매하고 있다. (장유진 기자 yxxj@)
▲12일 오후 서울 지하철 논현역 상가에서 빵을 판매하고 있다. (장유진 기자 yxxj@)
“무조건 1000원!”

유동 인구가 많은 지하철역에선 이 같은 문구를 담고 있는 플래카드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소보로빵, 단팥빵, 크림빵, 모카 번 등 수많은 종류의 빵을 단돈 ‘1000원’에 팔고 있는 빵집이 내건 플래카드입니다.

저렴한 가격과 출퇴근길 간편하게 들릴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인기를 끌면서, 1000원 빵집은 우후죽순 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기본적인 저가 빵은 물론, 카스텔라, 소시지 빵, 크루아상 등 상대적으로 고급 빵도 균일가 1000원에 판매하죠.

그런데 일각에서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도 합니다. 싸도 너무 싼 가격에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을 처분하는 건 아닌지, 재료의 품질이 낮은 것 아닌지 궁금해하는 건데요.

걱정은 덜어도 되겠습니다. 이 같은 업체들은 ‘박리다매’의 판매 방식을 추구하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으로 빵을 판매할 수 있는데요. 봉지 빵들은 어디서 오는지, 어떻게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12일 오후 서울 한 지하철역 상가에서 빵을 판매하고 있다. (장유진 기자 yxxj@)
▲12일 오후 서울 한 지하철역 상가에서 빵을 판매하고 있다. (장유진 기자 yxxj@)
2000년대 중순 이후 다시 등장한 ‘1000원 빵’…저렴하게, 많이 판매해라!

1000원 빵집이 최근 새롭게 등장한 건 아닙니다. 2000년대 중후반엔 지하철역 내부, 혹은 인근에 위치한 빵집에서 ‘빵 3개에 1000원’을 내세우면서 인기를 끈 바 있습니다. 이후엔 작은 매장에서 빵을 직접 구워 판매하는 저가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등장해 출퇴근길 코를 즐겁게 했죠.

그러나 국내 베이커리 시장이 성장하고 젊은 층의 빵을 중심으로 한 기타식품 소비 증가, 식습관 변화 등으로 저가 양산형 빵의 인기는 빠르게 식어갔습니다. 봉지에 든 빵이 아닌 직접 구워낸 베이글, 소금빵, 크루아상 등 식사빵을 판매하는 프리미엄 베이커리가 소비자들의 발길을 붙잡은 겁니다.

물가가 치솟으면서 먹거리 가격도 함께 올랐는데요. 빵값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2년 전인 2022년에는 빵값이 전년 대비 11.8% 올랐고, 지난해에도 9.5%나 올랐습니다. 3%대인 연간 물가상승률을 크게 웃도는 수치입니다.

1000원 빵집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입니다. 고물가 시대 소비자 심리를 꿰뚫었다는 평가가 나오는데요. 지하철 이용 요금인 1400원보다 낮은 가격이니, 가벼운 한 끼로 손색이 없다는 거죠.

1000원 빵집의 빵은 롯데, 해태, 삼립과 같은 빵 브랜드의 유통을 맡는 총판에서 직접 떼오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일 만든 빵을 곧바로 가져오니 소비기한이나 품질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프랑스산 밀가루나 버터, 동물성 크림 등 고품질의 원재료를 사용하는 베이커리 전문 브랜드들과는 달리 마가린과 식물성 크림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제조 원가율을 낮추고, 재고 물량을 절대 반품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아 저렴하게, 빠르게 많이 판매하면서 이윤을 남깁니다. ‘박리다매’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죠.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한국, 빵값 유독 높다…일본 980원 소금빵이 한국선 3000원 안팎

1000원 빵이 다시 각광을 받는 이유는 너무 높은 빵가격 때문입니다. 한국은 빵이 유독 비싼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빵 가격에 빵과 인플레이션을 합친 ‘빵플레이션’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죠.

어느새 스테디 메뉴로 자리 잡은 소금빵이 대표적입니다. 소금빵을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진 일본 에히메현의 ‘팡 메종‘(pain maison)에서는 소금빵 1개를 110엔, 우리 돈으론 약 980원에 팔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소금빵 1개를 사 먹으려면 3000원 안팎을 줘야 합니다. 크림이 들어가거나 버터를 끼워 넣는 경우엔 6000~7000원대에 달하는 가격을 자랑하죠.

베이글도 미국 뉴욕에서는 플레인 기준 1~2달러 안팎이지만, 한국에선 3000~4000원대의 가격으로 판매됩니다.

글로벌 물가 통계 사이트인 넘베오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식용빵 1덩이(500g) 가격은 2.83달러로, 세계 6위 수준입니다. 미국(3.56달러)과 스위스(3.45달러), 덴마크(3.03달러) 등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우리나라의 2배 이상인 나라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죠. 반면 일본의 빵 가격은 500g당 1.43달러로 세계 40위에 그쳤습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 감시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서울 시내 파리바게뜨 ‘후레쉬 크림빵’ 가격은 1700원으로 1년 전(1400원)에 비해 21.4% 올랐습니다. 같은 기간 파리바게뜨의 ‘달콤한 연유 바게트’ 가격은 3100원에서 3400원으로 9.7% 상승했죠. 뚜레쥬르 ‘슈크림 빵’도 1700원에서 1900원으로 11.8% 올랐습니다.

국내 빵 가격이 높은 이유는 원재룟값뿐 아니라 임차료와 인건비가 비교적 높은 데다가, 유통 구조도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원재료 수입사, 도매상, 소매납품업체 등으로 이어지는 유통 단계마다 마진이 붙어 복잡한 단계를 거칠수록 소비자 가격도 높아질 수밖에 없죠.

여기에 삼립과 파리바게뜨 등을 거느린 SPC그룹이 국내 제빵 시장의 약 40%를 차지하면서, 빵 가격 인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국내 빵 가격이 해외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는 불만이 지속해서 나오자,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제빵업 실태 조사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제빵 주요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 유통 구조, 가격 결정 요인 등을 파악할 예정인데요. 제빵 산업의 경쟁 상황을 파악하고, 담합 등이 발생하지는 않는지도 들여다볼 계획입니다. 기존의 법이나 규제로 인해 신규 진입이 어렵지는 않은지도 확인하는데요. 경쟁을 통해 기업이 빵 가격을 무리하게 올리지 않도록 감시하겠다는 취지입니다.

▲1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밀가루가 진열돼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1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밀가루가 진열돼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밀가루 가격 내렸는데 빵값은?…저가형 빵집 인기 이어질 듯

앞서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2022년 급격히 상승했던 국제 밀 가격은 최근 절반 가까이 떨어졌습니다. 이에 정부는 식품업계에 재료 가격 하락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것을 권고했는데요.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달 식품업계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식품업계는 국제 원재료 가격 변화를 탄력적으로 가격에 반영해 물가안정에 협조해달라”고 당부했죠.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곡물 가격지수는 올해 2월 113.8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인 2022년 3월(170.1) 대비 33.1% 하락했습니다. 유지류 가격지수는 2022년 3월 251.8로 고점을 찍은 뒤 지난 2월 120.9로 떨어졌습니다.

정부 권고에 따라 가정용 밀가루 시장 점유율 61% 수준인 CJ제일제당은 지난달에 소비자 판매용 밀가루 3종 가격을 평균 6.6% 내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삼양사와 대한제분도 각각 제품 가격 인하를 결정했는데요. 문제는 가격이 낮아지는 게 소비자용 제품에 한정된다는 겁니다. 빵이나 과자 가격 인하로까지 이어지긴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데요. 업계 관계자들은 재룟값을 제외한 인건비, 가스비 등 제반 비용이 여전히 높아 메뉴 가격을 조정하긴 어렵다고도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에 당분간은 1000원 빵집이나 저가 프랜차이즈 빵집의 인기도 이어질 전망입니다. 고물가 시대, 가성비를 앞세운 운영 방식은 소비자들이 환영하는 강력한 경쟁 요소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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