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22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입법권력을 4년 더 보유하게 됐다. 특히 쟁점 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강제 종결 기준선(180석)을 돌파하면서 21대 국회에 이은 거야(巨野) 독주가 재연될 공산이 커졌다.
당장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부터 노란봉투법·양곡관리법 등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단독 처리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쟁점 법안들이 22대 국회에서 재추진될 전망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상속세 완화 등은 야당의 반대로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1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개표 결과, 민주당(161석)은 비례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14석)과 함께 175석으로 단독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비례 12석 조국혁신당을 비롯해 진보당(1석)·개혁신당(3석)·새로운미래(1석) 등 범야권 최대 192석에 달한다. 반면 국민의힘(90석)·국민의미래(국민의힘 비례정당·18석) 등 108석에 그쳤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다음 국회에서도 국회의장·주요 상임위원장직을 확보하게 된 것은 물론 법안·예산 처리 주도권도 쥐게 됐다. 다만 소관 상임위에서 부결된 법안을 본회의로 직접 상정할 수 있는 패스트트랙(재적의원 5분의 3 찬성)을 활용하려면 조국혁신당 등 타 당 협조를 구해야 한다. 민주당이 자체 180석에 미달해서다.
이런 의석 지형은 민주당 강행 입법→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국회 재의결(재적의원 3분의 2 찬성) 절차에 따른 폐기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된 21대 국회와 유사하다. 국민의힘이 거부권·대통령 탄핵·개헌선(100석) 사수 의석을 넘긴 만큼 이번 국회에서도 같은 악순환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거부권과 무관한 민주당 주도의 특검 정국은 예정된 수순이다.
야권 내에선 벌써부터 김 여사 특검을 비롯한 각종 특검이 거론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장 출신 이성윤 민주당 전북 전주을 후보는 당선 직후 "김건희 부부 특검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조국혁신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조국 대표는 이날 대검찰청 앞 기자회견에서 검찰에 김 여사 소환조사를 촉구했다. 앞서 조 대표는 '한동훈 특검법'을 1호 법안으로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딸 논문 대필 의혹을 특검으로 규명하겠다는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일찌감치 김 여사 특검법, 이종섭 주호주 대사 임명 관련 특검법,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검법, 서울-양평고속도로 의혹 등 추진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거부권으로 폐기된 노란봉투법·양곡관리법·방송 3법·간호법 등도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은 사용자 범위를 원청업체로 확대하고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무차별적 불법 파업을 조장해 산업 생태계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여당과 재계가 반대했다. 양곡관리법은 초과 생산 쌀에 대한 정부 의무 매입을 규정했다. 여당은 해당 법이 쌀 과잉 생산·쌀값 하락 요인이 된다고 보고 반대했다.
그밖에 금융회사의 직전 5년 대비 순이자수익이 120%를 초과하면 '상생금융기여금' 명목으로 최대 40% 징수하는 내용을 담은 횡재세법, 공공기관의 사회적 기업 제품 의무 매입을 규정한 사회적경제법 등 시장원리 역행 우려가 나오는 법안도 대거 추진될 전망이다.
반면 윤 대통령이 민생토론회에서 약속한 금투세 폐지는 물론 상속·증여세 완화 카드 등 민주당 내 반대 기류가 감지되는 세법 개정 현안은 불발될 가능성이 높다. 야권의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압박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재명 대표는 총선을 앞두고 정부에 13조 원 규모의 전 국민 1인당 민생회복지원금 25만 원을 제안하며 추경을 요구한 바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의석 차가 별로 안 나면 여소야대라도 타협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의석이 한쪽(민주당)으로 쏠리면 법안 처리와 거부권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다음 국회에서도 정치는 실종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