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에 좌우되는 경제 바람직안해
공급망관리 등 정부역할 강화해야
가상자산을 대표하는 비트코인은 중앙은행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했다.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칭한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 “중앙은행과 정부가 화폐 발행을 독점하고 마구 찍어내면서 통화 가치를 떨어뜨려 신뢰를 잃게 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비트코인이었다. 그런 비트코인마저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움직임에 가격이 이리저리 요동치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현 경제와 시장 상황을 살펴보면 바야흐로 연준을 필두로 한 전 세계 중앙은행의 전성시대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투자자들의 모든 눈과 귀는 중앙은행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새해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마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3월 기준금리 인하설’을 일축하자 미국 증시 나스닥지수가 2% 이상 빠지는 등 시장이 요동친 것도 중앙은행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시장이 얼마나 민감한지를 보여준 최신 사례였다.
이렇다 보니 연준 등 중앙은행들이 배후에서 막대한 권력을 휘둘러 세계 경제와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음모론이 단골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각국 정부가 중앙은행들에 자신들이 해결해야 할 경제적 숙제를 떠넘기는 것이 중앙은행들이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게 하는 근본 원인이다. 정부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중앙은행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이라는 미증유의 사태와 이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보면 정부가 얼마나 중앙은행에 의존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연준은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2022년 3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기준금리를 5.25%포인트(p) 인상했다. 이는 약 40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린 것이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는 2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 등 다른 중앙은행들도 인플레이션을 잡고자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섰다.
이렇게 중앙은행들이 긴박하게 움직이는 동안 슬프게도 각국 정부의 물가를 잡으려는 움직임은 이들 중앙은행만큼 눈에 띄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세계를 뒤흔들었던 인플레이션은 코로나19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공급망이 강하게 압박을 받은 것에서 비롯됐다.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은 근본적으로 금리를 조절해 수요를 억제하거나 반대로 풀어 물가를 제어하는 것이다. 공급 측면에서 각국 정부가 똑바로 일하지 못하니 중앙은행들이 공격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며 그만큼 시장도 중앙은행의 행보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쏟게 된 것이다.
아무리 중앙은행의 정책수단 효과가 좋다고 하더라도 실물경제가 금리에 지나치게 좌우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미국 경제가 연착륙으로 순조롭게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금리 환경에 자동차 대출 연체율이 뛰고 카드빚이 느는 등 위험요소도 커지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결국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정부가 중앙은행에만 너무 많은 짐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한 주역으로 사람들은 바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을 떠올린다. 당시 연준 의장이 누구인지는 거의 모른다. 파월 연준 의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전 세계 시장이 요동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중앙은행들이 너무 큰 힘을 갖는 것이 그토록 걱정스럽다면 정부가 중앙은행에 모든 짐을 떠넘기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도록 비판과 감시를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