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로 규정해야” vs “연구 부족ㆍ신중해야”
메타버스상에서의 공격, 괴롭힘, 성폭행에 대한 신고가 증가하고 있다. 일부는 이러한 사건을 심각한 범죄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당국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4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은 지난달 전 세계 경찰에 가상현실(VR)에서 이뤄지는 성폭력 범죄를 해결할 수 있는 프로토콜(규약)을 개발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 법무부의 지원을 받은 ‘더 제로 어뷰즈 프로젝트(the Zero Abuse Project)’는 올 봄에 연방 및 지방경찰을 대상으로 메타버스의 위험성을 설명하는 워크숍을 개최할 예정이다. 인터폴은 보고서에서 “메타버스의 사용과 참여자 수가 증가함에 따라 메타버스에서의 범죄와 피해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메타, 애플 등 기술 기업들이 가상 및 증강현실 서비스와 기기를 잇따라 출시하면서 관련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 또한 가상현실에서의 얼리 어답터들 상당수가 성폭행이 난무한 것으로 전해진 비디오 게임 산업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당시에는 남성 게임팬들이 여성 개발자들을 색출해 괴롭히는 ‘게이머게이트’ 사태까지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비디오게임 시절의 문제가 가상현실로 옮아갔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2018년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가상현실을 정기적으로 사용하는 여성의 49%가 최소 한 번 이상의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최근에는 디지털 세계에서의 괴롭힘은 실제 공격과 유사한 심각한 심리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여러 연구결과이 나오고 있다. 메타버스에서의 괴롭힘에 대한 연구결과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인 미국 클렘슨대학교의 궈 프리먼 교수는 “가상현실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괴롭힘은 점점 더 큰 우려가 되고 있다”면서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학대를 이유로 사용을 그만두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가상현실이 몰입감이 높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자신을 만지는 것 같고, 더 나아가 오프라인상의 몸도 공격을 받는 것 같다고 느낀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실제로 가상현실상에서 행위를 범죄로 기소하려면 법적 판례를 대폭 수정해야 한다. 현행법상에서 강간과 성폭행에 관해서는 신체적 행위가 발생했다는 증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여러 번 위반한 전력이 있어야 하고 증명하기 까다로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즉각적인 프로토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 제로 어뷰즈 프로젝트의 조사 전문가인 댄 배리는 “가상현실 프로그램에서 13세 소녀의 프로필로 설정한 결과 거의 즉시 남성 아바타에게 인사를 받았고, 성적인 발언과 사적인 채팅 요구가 이어졌다”면서 “이 공간에서는 통제가 많지 않아 아이들이 어른들로부터 성적으로 폭행을 당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이를 범죄로 규정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강간법을 연구해온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의 법학교수 아야 그루버는 “사람들은 비디오 게임에서 항상 서로를 죽이지만, 우리는 그들을 살인자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조지 워싱턴 로스쿨 교수인 메리 앤 프랭크스는 “가상현실에서의 폭행 등의 학대는 현실적이지 않고 심각하지도 않다는 오랜 견해가 있다”고 설명했다.
가상현실에서의 행위를 범죄로 분류하기 전에 가상현실에서의 범죄 또는 비윤리적 행위가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위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시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