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저출산’과 ‘저출생’이란 표현이 혼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저출생은 저출산의 대체 용어다. 저출산이란 말이 저출산 문제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한단 지적에 따라 쓰이기 시작했다. 국회에서도 저출산 용어를 저출생으로 바꾸는 내용의 법률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문제는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바꿔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느냐다.
먼저 저출생이란 말에는 기술적 오류가 있다. 저출산은 개념이 단순하다. 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출산율)이 낮다는 의미다.
반면, 저출생은 개념이 모호하다. 저출생을 출생률(조출생률,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이 낮은 상태라고 한다면, 이것이 문제인지 아닌지가 불명확해진다. 출생률의 모수는 총인구다. 출산율이 변하지 않았어도 총인구 중 가임여성 비중이 변하면 높아지거나 낮아진다. 15년간 출생아가 급증해 유소년 인구를 중심으로 총인구가 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상황이라면 출산율은 높게 나타난다. 그런데, 출생률은 낮아진다. 출생아 수는 전년과 같아도 모수인 총인구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저출생으로 정의하고, 사회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렇듯 저출생이란 말은 현상을 객관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저출생을 출생아가 적은 상태라고 한다면 접두사를 낮을 저(低)에서 적을 소(小)로 바꿔야 한다. 저출산이 아닌 소출생이다. 어감이 이상한 건 차치하자. 그런데, 소출생이란 말에도 문제가 있다. 출생아가 적다고 하려면 기준이 필요한데, 소출생·다출생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만든다면 출산율을 활용해 산출해야 할 텐데, 이 경우 기준은 매년 달라진다.
무엇보다 저출생이란 말로는 무엇도 해결할 수 없다. 출생률을 높이겠다고 모수인 총인구를 줄일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출생아가 늘게 해달라고 고사라도 지낼 것인가.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선 저출생보단 기존대로 저출산을 쓰는 게 적절하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저출산이란 말이 저출산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표현으로 보기 어렵다. 국내 출생아 중 97%는 혼인관계인 부부에게서 태어난다. 출산율이 낮아졌단 건 혼인관계인 부부가 줄었거나, 출산을 포기하거나 미룬 부부가 줄었단 의미다. 이런 관점에선 대책의 방향도 명확하다. 결혼·출산의 기회비용을 줄이고, 육아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면 된다.
억지로 명칭을 바꾸기보단 기존 명칭에 덧씌워진 성차별적 해석을 지우는 게 먼저다.